[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도리’라는 마을 이름은 “마을이 넓은 들 가운데 섬[島]처럼 되었으므로 섬말, 도리(島里)라 하였다”고 한다.(향토문화전자대전 발췌)합덕읍사무소에 따르면 4월 27일 기준, 도리에는 78세대 143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벼농사에 종사한다.1965년생인 김복순 이장은 남편과 결혼하면서 마을로 이주해 왔으며 20여년 째 거주하고 있다. 그동안 부녀회장도 맡았었고, 이장직은 2년째 맡고 있다고. 김복순 이장은 농기계 관련 사업을 하는 남편과 함께 일하고 있어, 때로 필요한 농기계부품을 사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이종운 이장은 1975년 합덕리 출생으로 벼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마을 토박이다. 7년여 동안 합덕리 새마을지도자를 맡기도 했고, 이장직은 2년째 맡고 있다. 합덕리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합덕제와 합덕성당이 위치해있다. 합덕성당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라 눈앞에 보이는 마을이 합덕리다. 합덕리는 성직자를 많이 배출한 성소마을로도 알려져 있다. 이종운 이장은 “우리 마을은 천주교인이 95%이고 마을에서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신부님과 수녀님 등 총 100여명을 배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 마을 주민들에게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1961년생 신촌리 출생인 이덕기 이장은 평생 신촌리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마을 토박이다. 마을에는 95세대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 벼농사를 짓고 있다. 이덕기 이장은 “요즘은 농촌의 정서가 메말라가는 듯하다”며 “옛날에는 두레도 있고, 명절이나 단오날 풍물놀이도 했지만 지금은 다 없어졌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르신들의 외출도 줄었다.옛날 이야기가 나온김에 더 여쭤보니 “마을 주위에 포구가 3곳 정도 있었고, 어린시절에 가마니의 쌀을 배에 싣는 모습들을 봐왔다”며 “인천가는 배들이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장고항’이란 이름은 포구의 경관이 장고[장구]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고항은 국화도로 향하는 방문객도 거쳐가는 곳이며, 낚시나 수산물 등을 즐기기 위해 방문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특히 요즘은 실치철이라 장고항을 향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장고항2리는 시골어촌마을이었으나 주변에 석문산단이 위치해있고 장고항이 국가어항으로 지정되며 인구유입과 상인이 늘어나는 등 발전해 나가고 있다.1970년 장고항 출생인 유문식 이장은 그동안 새마을지도자 석문면 협의회장, 석문면개발위원회 사무간사 등을 맡았
코로나19로 마을 활기 줄어...“독거 어르신 펑펑 우시기도”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통합 대상이었던 가재리(佳才里)와 삽교리(揷橋里)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가교리(佳橋里)’라고 하였다.(향토문화전자대전 발췌)[당진신문=오동연 기자] 1960년생인 조영금 이장은 가교리 출신인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40여년 전 마을로 이주해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부녀회장, 농가주부모임 회장, 생활개선회 사무국장·송악읍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이장은 6년째 맡고 있다. 조영금 이장은 “옛날 부녀회 일을 볼 때부터 시아버지께서 많이 도와주셨고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강문리는 조선 시대 아산만의 최대 해상 활동의 근거지인 범근내(泛斤乃) 입구가 되므로 ‘강문리(江門里)’라 하였다.(향토문화전자대전 중)신현철 이장은 1958년 강문리 출생으로, 대부분의 주민들처럼 벼농사를 짓고 있다. 신현철 이장이 마을 이장을 맡은 지는 9년째. 우강면 이장단협의회장은 2년째 맡고 있다. 옛날 마을 모습은 어땠는지 여쭤봤더니 마을에 포구가 있어 배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신현철 이장은 “70년대까지만 해도 포구가 있었고 창고도 여러곳이 있어, 면천과 합덕 등의 물류가 이곳으로 왔었다”며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복포리(伏浦里)와 상운리(上雲里)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복운리(伏雲里)라 하였다. (향토문화전자대전 발췌)당진시 송악읍 복운3리는 복운신도시 혹은 이주단지로도 불리운다. 송악 IC, 부곡공단과 인접한 위치에 있으며 마을에는 부곡동광아파트, 신성미소지움 1·2단지 아파트 등에 많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고 원룸 등 다세대주택, 상가도 형성돼 있다.현재 2,412세대, 4,529명이 거주하고 있다.(18일 기준) 복운3리는 당진 지역의 다른 농촌마을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마을
진관리는 백제 때 당나라로 통하는 길목으로, 당나라 사신들이나 사객, 행인을 도와주는 진관(眞館)이 있어서 ‘진관리(眞館里)’라 하였는데, 유숙을 위한 집이 있었으므로 부른 지명이다. (진관1리 마을게시판 마을 유래에서 발췌)[당진신문=오동연 기자] 고대면 진관1리에는 고대종합운동장과 영랑사가 위치해 있고, 주민 316명, 156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1963년 진관1리 출생인 김선호 이장은 어린시절 상경한 이후 자녀교육과 사업으로 미국에서 14년 동안 생활을 하기도 했다. 2016년경 부모님이 계신 고향 진관1리로 돌아왔으며 이장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도시인에게는 낯선 나라의 호칭쯤으로 여겨지는 이장. 이장이라는 존재는 마을의 행복을 위한 마을경영을 해오고 있는, 작지만 큰 CEO다. 이에 본지는 ‘이장발언대’를 통해 마을의 불편사항을 토로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꼭대기에 토성 터가 있고, 석우리(石隅里)와의 경계에 있는 성재[城山]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성동리(城東里)라고 하였다.(향토문화전자대전 발췌)합덕읍 성동리에는 234명, 96세대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70~80% 주민들이 벼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1963년 출생인 곽재성 이장도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도시인에게는 낯선 나라의 호칭쯤으로 여겨지는 이장. 이장이라는 존재는 마을의 행복을 위한 마을경영을 해오고 있는, 작지만 큰 CEO다. 이에 본지는 ‘이장발언대’를 통해 마을의 불편사항을 토로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초락도리(草落島里)는 풀이 무성한 섬이라 하여 푸레기라 하며, 이는 풀은 ‘벌’→‘뻘’→‘펄’→‘풀’로 간석지를 뜻하고 엑[풀+엑+이]은 어귀, 곧 입구를 뜻하는데, 즉 간석지 입구에 있는 섬이란 의미의 ‘풀어귀의 섬’이다. 한자 표기로는 풀 초(草) 자와 양반이 이 섬에 낙향했다 하여 떨어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도시인에게는 낯선 나라의 호칭쯤으로 여겨지는 이장. 이장이라는 존재는 마을의 행복을 위한 마을경영을 해오고 있는, 작지만 큰 CEO다. 이에 본지는 ‘이장발언대’를 통해 마을의 불편사항을 토로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일제 말 해미장과 면천장의 중간지점인 황소 고개 밑에서 장사꾼들이 황소에 덕석(소등에 덮는 방한재)을 입혔다는 덕석골이란 마을의 덕(德) 자와 3상(三相)과 8판서(八判書)가 속출하였다는 삼상지평(三相地坪,삼상벌)이란 마을의 삼(三) 자를 따서 덕삼리(德三里)라 부르게 되었다.(한국향토문화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도시인에게는 낯선 나라의 호칭쯤으로 여겨지는 이장. 이장이라는 존재는 마을의 행복을 위한 마을경영을 해오고 있는, 작지만 큰 CEO다. 이에 본지는 ‘이장발언대’를 통해 마을의 불편사항을 토로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사기소(沙器所)는 도자기를 굽는 곳을 뜻하는데, 면천면 사기소리는 옛날에 도자기를 굽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재열 이장은 1965년 사기소리 출생으로, 군복무 시절을 제외하고는 고향을 거의 떠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군 제대후 시작한 택시운전사가 직업으로, 개인택시 당진시지부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도시인에게는 낯선 나라의 호칭쯤으로 여겨지는 이장. 이장이라는 존재는 마을의 행복을 위한 마을경영을 해오고 있는, 작지만 큰 CEO다. 이에 본지는 ‘이장발언대’를 통해 마을의 불편사항을 토로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성상2리에는 골정지(골정제,骨井堤)가 위치해 있다. 골정지의 정자인 건곤일초정은 1800년 당시 면천군수였던 박지원이 건립한 것으로, 현재 정자는 2006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디지털당진문화대전 발췌)1961년 성상2리 출생인 김영성 성상2리 이장은 5년째 이장직을 맡고 있으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도시인에게는 낯선 나라의 호칭쯤으로 여겨지는 이장. 이장이라는 존재는 마을의 행복을 위한 마을경영을 해오고 있는, 작지만 큰 CEO다. 이에 본지는 ‘이장발언대’를 통해 마을의 불편사항을 토로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월곡리는 마을 모양이 반월(半月) 모양이라 다라실[月谷]로 불렸으며, ‘다라’는 달을, ‘실’은 실[谷: 마을]을 뜻하므로 월곡(月谷)으로 불렸다고 전한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발췌)기자가 편현범 월곡리 이장을 처음 만났을 때는 2012년이었고, 당시 월곡리 주민들은 철탑(송전탑)이 마을을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도시인에게는 낯선 나라의 호칭쯤으로 여겨지는 이장. 이장이라는 존재는 마을의 행복을 위한 마을경영을 해오고 있는, 작지만 큰 CEO다. 이에 본지는 ‘이장발언대’를 통해 마을의 불편사항을 토로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대호지면 사성리의 사는 모래 사(沙)자를 쓴다. 마을이 해안에 위치해 모래사장이 성처럼 둘러싸여 있어 사성리(沙城里)라고 불렀다고 한다.(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1955년 사성1리 출생인 이영식 이장은 3년째 이장직을 맡고 있다. 방조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대호호에 큰 배가 드나들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도시인에게는 낯선 나라의 호칭쯤으로 여겨지는 이장. 이장이라는 존재는 마을의 행복을 위한 마을경영을 해오고 있는, 작지만 큰 CEO다. 이에 본지는 ‘이장발언대’를 통해 마을의 불편사항을 토로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정미면에 속한 봉생리의 ‘봉’은 봉황 봉자와 태어날 생을 쓴다. 봉황이 나온 마을이라는 뜻. 옛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구씨가(具氏家)에서 장사를 치르는데 하관 직전에 조금 더 파야 된다고 하여 다시 파기 시작하였고 밑바닥 돌장을 떠 일으키자 봉황새 한 쌍이 날았다... 이때 급히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도시인에게는 낯선 나라의 호칭쯤으로 여겨지는 이장. 이장이라는 존재는 마을의 행복을 위한 마을경영을 해오고 있는, 작지만 큰 CEO다. 이에 본지는 ‘이장발언대’를 통해 마을의 불편사항을 토로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우강면과 신평면의 경계 인근에 위치한 부장리(富長里)는 삽교천과 남원천에 인접한 농촌마을이다. 전경수 부장리 이장은 “옛날에는 마을인근에 인천을 오가는 배가 드나들어 쌀을 팔고 생선이 들어오곤 했었다”며 “삽교호 방조제를 막기 전까지 70년대 중반까지 배가 들어왔었다”고 회상했다.1954년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도시인에게는 낯선 나라의 호칭쯤으로 여겨지는 이장. 이장이라는 존재는 마을의 행복을 위한 마을경영을 해오고 있는, 작지만 큰 CEO다. 이에 본지는 ‘이장발언대’를 통해 마을의 불편사항을 토로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마을 연혁에 따르면 금천1리는 옛날 홍주군(홍성) 신북면 지역으로 시냇가에 해당돼 쇠내 즉 ‘금천리’라 불려졌다고 한다. 1930년대부터 5일장인 신평장이 서고 있고 면소재지로 우체국, 파출소, 면사무소, 농협 등이 위치해있다.유순호 금천1리 이장은 1959년생으로, 마을총무 12년을 거쳐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도시인에게는 낯선 나라의 호칭쯤으로 여겨지는 이장. 이장이라는 존재는 마을의 행복을 위한 마을경영을 해오고 있는, 작지만 큰 CEO다. 이에 본지는 ‘이장발언대’를 통해 마을의 불편사항을 토로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기지시리는 당진 인구증가와 함께 가장 변모한 마을 중 하나다.많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기지시리는 송악읍 마을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마을이 됐다. 송악읍 행정복지센터에 따르면, 지난 11월말 기준 송악읍 인구 3만여 명 중 기지시리 인구는 8,044명이다. 또한 기지초등학교 학생수는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도시인에게는 낯선 나라의 호칭쯤으로 여겨지는 이장. 이장이라는 존재는 마을의 행복을 위한 마을경영을 해오고 있는, 작지만 큰 CEO다. 이에 본지는 ‘이장발언대’를 통해 마을의 불편사항을 토로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1954년 대호지면 적서리 출생인 차경렬 적서리 이장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들 또한 쌀과 고구마 농사를 주로 하고 있다. ‘적서리’라는 마을 이름의 뜻을 물으니 차경렬 이장은 “적자는 ‘붉을 적(赤)’, 서는 ‘쥐 서(鼠)’로 직접 본 적은 없으나 옛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