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면천보통학교 3.10독립만세운동 재현

제90주년(1919) 면천보통학교 3·10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가 지난10일 면천초등학교 교정에서 열렸다.
3.1절 90주년을 맞아 면천보통학교 3·10독립만세운동기념사업회(회장 오연섭)가 주최·주관한 이번 행사는 면천중학교, 면천초등학교, 순성초등학교, 순성중학교, 일반 시민 등 1천여 명의 인원이 참가했으며 1919년 3월10일 면천보통학교 전교생이 충남도내에서 가장 먼저 독립만세운동을 결행한 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이뤄졌다.


이번 행사는 총 4부로 진행되었다.
제1부 식전행사에서는 면천중학교 풍물반 학생 35명이 우리 쇳소리로 어우러 지는 고유의 가락을 공연하여 행사에 동참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제2부 행사에서 학생들은 학생대표의 독립선언문 낭독과 면천중학교 김성삼 교장선생님과 1천여 명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부르는 3.10학생독립운동 노래가 면천면 전역에 울려 퍼졌으며 유족대표인 김기평 씨와 박철순 씨의 인사도 진행됐다.

이 날 학생대표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이소영 학생은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은 선배님들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뜻 깊은 기회였다”고 참가 소감을 말했다.


제3부에서는 3·10학생독립만세운동을 자손만대에 기리기 위해 건립된 기념탑(군자정 앞)을 제막하는 제막식도 열려 그 의미를 더했으며 제4부 3.10학생독립만세 행진에서는 90년 전 당시의 만세운동을 재현한 시내 행진을 통해 학생들과 시민들이 그때 당시의 독립 의지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에 참여한 한상진(당진읍, 54)씨는 “점점 잊혀져 가는 우리 역사를 군민들과 학생들에게 알리고 기억시킬 수 있어 의미가 깊은 행사”라며 “재현 행사를 통해 조상들이 어렵게 지켜온 우리 고장을 더욱 사랑하고 아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공로패와 감사패, 3·10만세 장학금 수여 등 뜻 깊은 시간도 함께했다.
신동원 기자 habibi20@naver.com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이란?]

면천보통학교에 다니던 원용은 학생은 큰형 원용하와 함께 1919년 고종황제 인산에 참례차 서울에 갔다가 마침 3·1운동이 벌어져 남·여 학생들이 선두에서 일반 군중과 함께 열광적으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는 광경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아 벅찬 감격을 가슴에 안고 귀향하여 독립만세운동을 거사키로 굳게 다짐했다.

면천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원용은은 동급생 박창신과 거사를 상의하고 4학년 급장 이종원과 밀의하여 전교생에게 독립만세운동을 할 것을 주지 시켜놓고 제반행사 준비에 바빴다.


3월 10일은 러·일 전쟁 시 일본군이 만주 봉천성을 함락시켜 일본 국경일로 정한 날이다. 학교가 국경일 행사를 마치고 오후 수업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예견하고 이날 오후 4시에 거사키로 정했다.

원용은은 자기 집에 논을 팔아두었던 돈을 몰래 가져와 당복(옷감)을 사서 자기 집에서 아무도 모르게 플래카드와 태극기를 만들고 깃대를 구하여 면천 동문 밖 송림산 속에 감춰두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학생 대표로 3·8운동을 주도했던 강선필이 갖고 온 독립의 노래를 원규상이 등사판에 수 백매를 만들어 전교생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하여 3·10 오후 4시경 동문 밖 저수지를 지나 산 너머 으슥한 골짜기에 전교생은 다 집합되었다.
이에 원용은은 높은 대에 올라서서 자기가 서울에서 본 광경을 그대로 말하고 우리도 다 같이 기쁜 마음으로 독립만세를 부르자고 역설하였으며 미리 준비했던 태극기와 플래카드를 내보이면서 산속깊이 감춰두었던 깃대를 꺼내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고 대서특필한 10척 장폭의 플래카드를 길게 달아 행동개시에 들어갔다.

그때 이종원은 4학년 급장이고 박성은은 부급장인데 이종원은 대열 앞에서 끌고 박성은은 대열 뒤에서 미는 인솔책임을 맡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대오를 갖추어 행진해 나갔다.
원용은, 박창신 두 사람은 힘을 합하여 깃대를 높이 들고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라고 선창하면 그 뒤 대원들은 따라서 옹호하며 행진을 했다.


이리하여 질서 정연하고 늠름한 기세로 행진하며 읍내로 행진하는 도중 마침 덕산보통학교 심상열 선생님이 덕산에서 귀가하는 길에 행렬이 앞에 다가오자 이 광경을 보고 손을 번쩍 들어 독립만세를 불러 주었다. 이는 학생들에게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되어 용기백배하여 더욱 열광적으로 펄펄뛰며 면천보통학교 정문 앞에까지 당도하였다.

선생님들이 깜짝 놀라 저지하려 했으나 이를 막지 못했고 면천주재소(지금의 경찰 파출소) 앞을 통과하려 할 때 경찰이 출동하여 강력하게 저지하는 바람에 해산당하고 말았다.


그 후 2일째 되는 날 공주 헌병대에서 주모자 색출을 하러와 16세의 원용은과 18세의 박창신이었음을 알게 되어 이 두 학생은 당진경찰서에서 공주 형무소로 이감되었고 4개월간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이 때문에 원용은과 박창신은 면천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하여 졸업도 못하였다.
이 사실은 당시 4학년 급장이었던 이종원 선생님이 1977년에 쓴 회고록에서 밝혀졌고 공주형무소에서 찾아낸 형사기록부가 증명하고 있다.




‘오연섭’ 회장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기념사업회


“행사가 올해 2회째를 맞고 있습니다. 아직은 시작 단계라 많이 부족하지만 재현행사를 통해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에게 날로 퇴색해져가는 자주독립 정신과 애국애족의 숭고한 마음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또한 지역주민에게는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서로 화합하며 지역발전에도 기여하는 행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번 만세운동 재현행사 준비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오연섭 회장은 이 행사가 단순한 재현행사가 아닌 군민 모두에게 의미 있는 행사로 남길 바란다며 말을 시작했다.

이날 행사는 학생과 군민 등 1천여 명의 인원이 참여했다. 그러나 오 회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며 “의미가 깊은 행사인 만큼 면천과 순성만의 행사가 아닌 군민 모두의 역사적 행사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타 면에서 오기도 쉽지 않았고 홍보도 부족해 행사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주민들의 적은 관심과 기념비 준비 또한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오 회장은 “어린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전개하며 그 당시를 되돌아보고 체험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천천히 전개 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지금에서라도 재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많은 홍보로 참여를 유도해 차츰 발전하는 재현행사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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