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우체국 집배원 심 장 섭 씨

▲ 사람들에게 소식과 함께 시를 전하는 집배원 심장섭씨
‘똑똑’ 소리와 함께 미소를 띤 얼굴이 들어선다. 우편물 그 속에 담긴 온갖 소식을 한가득 안겨주고, 웃음도 남겨주고 발 빠르게 문밖으로 다시 나선다. 바로 심장섭(50·원당리)씨를 보고 하는 말이다.

얼마 전 우편물 뒤로 쑥스러운 듯 시집 한 권을 전해주었다. 알고 보니 그는 2004년 공무원문학에 시로 등단한 시인이었다.


문학동인지를 통해 여러 차례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껏 오로지 시만을 고집해오며, 지은 시만 해도 100여 편이 넘는다. 25년간의 집배일과 시인으로서 시를 노래하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심장섭씨를 소개한다.
손하경 기자 sarang418@hanmail.net


낮에는 집배원으로…  밤에는 시인이 되어

이른 아침 7시. 우편분류작업으로부터 그의 분주한 하루가 시작된다. 물량증가 등으로 인해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는 그를,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우편물류과에서 겨우 만나볼 수 있었다.


그 안은 주인을 기다리는 우편물로 가득 쌓여져 있었고, 늦은 시간까지 우편분류작업에 여념이 없는 집배원들로 분주하기만 했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지친 모습일 법도 한데, 웃음을 보이는 그에게서 어진 성품이 묻어 나왔다. 헬멧에 눌려진 머리를 보니, 그의 하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요즘 물량은 늘고, 해는 금세 지고... 하루가 모자라다 싶을 정도로 어찌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름철에는 낮이 길어서 여유 있게 배송하지만, 겨울철로 접어들면서 연말도 다가오고 점점 바빠지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 밀려드는 우편물을 제때 처리하려면,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할 때가 많지요.

보통 10시는 되어야 일을 끝마치게 됩니다. 분류작업을 통해 코스를 정하고, 원칙에 따라 배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편물을 빨리 갖다 달라고 재촉하실 때면, 죄송한 마음과 함께 곤란해집니다. 사정에 따라 먼저 갖다 드리고는 싶지만, 기준이 흐트러지게 되면 정작 급하신 분에게는 늦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준을 정하고, 배송원칙에 따를 수 밖에 없지요”


옛적의 ‘집배원 아저씨’는 편지를 전해주는 사람으로서, 그저 반가운 기다림의 대상이었다.
휴대폰 1인 1대를 보유하고 있는 요즘에는,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에 따라 우편물 주를 이루는 것은 그다지 반갑지 않은(?) 각종 고지서들 이다.


“우편물 대부분은 벌금을 비롯한 카드대금이 주를 이룹니다. ‘아이구 또 걸렸네, 벌써 카드값 낼 때가 됐나?’ 하며 걱정부터 하시지요. 그렇듯 달갑지 않은 표정을 대하게 되면, 예전에 비해 조금은 소외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것이 반갑든 반갑지 않든, 신속 정확하게 배송해 드리는 것이 목적이니,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택배로 물건을 받으시고 ‘고마움이 담겨진 말씀 한마디’ 해주실 때면, 쑥스러우면서도 아주 뿌듯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또한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듯, 오히려 그분께 감사한 마음이 들지요”

 


‘글’은 흰 백지 위 조금씩 채워가는 ‘삶’과 비례한다

누구나 어린시절 꿈은 거창하게 목표를 정해두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의 꿈은 대통령도, 의사선생님도 아니었다.
소박하지만 시를 쓰며,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는 심장섭씨. 그의 표정을 보니 잠시 그때로 돌아가 회상하는 듯했다.


“학창시절 글 쓰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그 중에 시문학만을 고집해 왔지요. 어릴 때야 어떤 기준을 두고 쓰는 것이 아닌, 형식의 구애를 받지 않고 썼을 뿐이지요. 몇 편의 자작시를 라디오방송국에 보냈더니, 채택이 되어 상품도 많이 받아봤습니다(웃음). 저희 때만 해도 TV가 흔치 않다보니, 라디오 듣는 것이 유일한 재미였지요”


현재 7급 공무원 집배원으로서, 일을 마친 후 틈틈이 시를 쓰고 있다. 일을 하며 많은 사람을 접하고, 지역 곳곳의 험한 곳을 굽이굽이 다니며 시상을 떠올린다고 한다. 고마운 분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도 잊지 않았다.


“저의 시를 의미있게 읽어주고,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해주는 동료들에게 늘 감사합니다. 또 저를 시인으로서 인정하시고 이끌어주신 한국문인협회 당진지부장님께도 감사합니다. 시를 쓰려면 자연과 사람을 많이 접해봐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일을 하며, 그것에서 많은 소재를 발상해 냅니다.

그것을 마음에 담아둔 채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다시 머릿속으로 되새겨보곤 하지요. 그리고는 새벽에 일어나 종이 한 장에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내년에는 제 이름 석자 ‘심장섭’ 시인으로 시집을 낼 계획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글’이란 삶 자체로 보여졌다. 소중한 아내와의 인연을 이어준 것도 글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아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내비쳤다.


“요즘은 편지를 쓰는 사람이 흔치 않아 아쉽습니다. 가끔씩 편지를 전해 드릴 땐 저도 설레이는 기분이 들더군요. 사실 아내와 펜팔로 알게 되어 만났습니다. 5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왔지요. 현재 제가 이중생활(?)을 하다보니 많이 바쁩니다.

그럼에도 항상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지요(여보 사랑해!) 제가 1남 1녀를 두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건강히 제 곁에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고, 소망입니다”
그는 시를 쓸 수 있는 것에 늘 감사하고, 그것이 행복이라 말한다.


그의 작품 속 “마음으로 가는 그리운 봄 풍경을 잡으려 길 떠나 스쳐 지난 오후 사물의 여백조차 남기지 않으려고…”「풍경을 도려내고」, “벌레들은 하나같이 제 밥그릇을 좀 더 가까이 가져가려고 얼마만큼 고뇌와 투쟁 속으로 달려가는가…”「백수」, “우리가 사랑한 날들이 얼마나 행복했는데 감았다 풀었다 하며…”「그대를 잊을 수 있을까」등의 글이 잔잔한 삶의 여유를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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