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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유성룡의 풍수지리 사상

닉네임
은봉
등록일
2010-10-06 03:27:22
조회수
6167
서애 유성룡의 풍수지리 사상

풍수에서 高, 胎, 岡, 正, 順, 低의 여섯가지 형세

퇴계 이황 선생의 제자이고 성리학의 대학자인 서애 유성룡은 ...마치 병이 난 부모를 돌팔이 의사에게 맡기는 것이 불효인것 처럼, 부모가 영구히 묻힐 곳을 졸렬한 풍수지사에게 맡겨서는 안된다며, 반듯이 집안에서 한사람 정도는 풍수지리를 공부하여야 한다고 후손들에게 당부하였고 그 자신도 풍수학을 공부하였다.

또 명당에 조상을 모셔 발복하려 해서는 안되며... 오로지 좋은 땅에 조상을 편안히 모시는 것을 효행으로 삼아야 하나... 조상의 체백이 편안하면 자손의 마음도 편안하지 않겠는 가...라고 하였다.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 당시의 재상으로써 "권율"과 "이순신"을 천거하여 임란을 대비케 하였고, "이순신"이 감옥에 갇혔을때 적극적으로 구명을 하여 백의 종군케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최근까지도 "이순신"의 후손들이 서애의 제사때 잊지않고 찾아 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서애도 당쟁의 회오리에서 비켜 갈수는 없었기에 삭탈관직되고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뒤 경상북도 하회마을로 귀향케 된다.

귀향후에 초가삼간을 짓고 어려운 삶을 이어갈때 "학가산 서미동"에서 저술활동을 하였는데, 이때 "징비록"이 저술되었다.

현 서애의 묘자리는 號가 掘齊(굴제)이고 이름은 元之(원지)로 그의 손자가 정한 곳이다. 아들 "위"와 "여"가 있었으나, "위"가 일찍 죽었고, "여"의 외아들인 "원지"로 서애의 유일한 손자인 것이다.

서애의 풍수지리관은 朱子(주자)의 山陵議狀(산릉의장) 글들이 자신의 문집 여러 곳에서 발견 되듯이 당대의 유학자 다운 풍수지리관을 나타내었다.

특별히, 가짜 풍수들에게 속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집안의 한 사람 정도는 풍수지리의 대략이라도 알아 둘것을 권하였다.

마치 병이 난 부모를 돌팔이 의사에게 맡기는 것이 불효인 것 처럼, 부모가 영구히 묻힐 곳을 졸렬한 풍수에게 맡겨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장손자 원지는 조부의 뜻에 따라 상당한 풍수지리에 관한 식견을 쌓았으며, 더군다나 유학자 다운 학문적 실용성을 추구하는 풍수지리관을 세웠다.

서애의 묘자리는 경북, 안동시 풍산읍 관내인데, 이러한 곳을 점혈한 조선조 유학자 집안의 풍수지리관을 살펴보기로 한다.

高(고)

墓의 위치를 보면, 주변보다 확연히 높은 곳에 위치한다, 따라서, 수해의 위험이 없는 곳이고, 일사량이 많은 곳이다.

고려조는 전쟁을 통하여 수립된 나라로 무인들의 득세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 것으로 방어하기 좋은 곳, 안전을 우선으로 하였기 때문에 산속의 藏風局을 선호하여, 상대적으로 산의 높은 곳에 위치하는 풍수지리가 성행되었고, 조선조 때에는 마을의 뒷산으로, 주변보다 높은 곳이니 得水局을 선호한 풍수지리관이었다고 보여진다.

胎(태)

묘자리에 서서 뒷쪽을 바라보면, 병풍을 두른듯 금체형의 현무봉이 있고, 당판은 타원형의 20~30m의 혈장이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것을 후룡으로 부터 마을 뒷쪽으로 내려오다가 경사가 완만해지며, 단단한 穴土를 이루고 혓바닥을 내밀듯 타원형의 穴場이므로 이곳에 氣를 모아 드러난 穴針이 존재하는 것이다.

岡(강)

혈장을 이루기 전, 바로 뒤에서 둥글고, 단단하게 튀어나오거나, 뒤 후룡이 점차 낮아지고 난 후에 다시 올라서서 혈장을 이루는 경우도 있듯이, 이를 속기라 하여 사람의 목처럼 흘러오는 용보다 가늘었다 굵어지는 것을 좌우굴곡이라 하고,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는 형세를 기복이라 하여, 혈장의 뒷 모습이 언덕을 이룬 것을 말한다.

正(정)

혈장의 위치에서 주변을 돌아보면, 산세는 혈장을 둘러쌓아 있으며, 좌우의 균형이 잘 맞아 떨어진다.

특히, 案臺(안대)의 경우 꼭 존재하고 있으며, 案臺로 向을 한다고 보면, 좌우의 균세가 너무도 잘 들어 맞는 곳이다. 이것을 正이라 하는 것이다.

順(순)

순하고 부드러운 곳이 명당인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심미안으로 누가 보아도 아름답고 포근함을 느끼는 것이고, 그림으로 말하면 황금분할의 묘수에 해당되는 것이다.

더불어 양명한 태양 빛이 내려 쪼이는 곳이기도 하다.

低(저)

이는 좌우 양팔에 해당되는 靑虎砂에 비하여 穴場은 낮기 마련으로 주변으로 부터 불어오는 風殺을 막아내는 형세를 말하는 것으로 穴場보다 좌우 靑虎砂가 더 높은 것이다. 따라서, 안온하고 포근함을 느끼는 곳이다.

이경우 혈장과 청호사의 높이가 적절함을 지녀야 하는 것이 포인트인데, 청호사가 혈장보다 너무 높아 하늘만 빼꼼이 보이는 것을 賊嶽(적악) 또는 賊殺(적살)이라고도 하여 대단한 凶이되는 것이다.

高, 胎, 岡, 正, 順, 低의 여섯가지 형세에 잘 부합되는 곳이라면, 일단은 陰宅으로써 손색이 없는 것이다. 형세에 의한 특징적 사항들은 부지기수로 많으나, 그 원칙인 근본에서는 이를 피할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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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히는 말씀.....

풍수지리가 과연 미신일 까요?...

미신은 어떤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의존하고 기대는 것인데...
풍수지리는 신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풍수지리를 미신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은 ...한참 잘 못 알고 계시는 겁니다..

풍수지리는 말 그대로 지질학이고 지리학이며 환경과학입니다..
즉, 미신이 아닌... 과학이라는 학문입니다..

그러니 진혈에 조상의 체백을 모시면 실제로 누런 황골로 변해 수백년 영구 보존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구요...

풍수지리학이 과연 무엇인지 한번 공부해 보시고...
그때가서도 과연 미신인지 말씀하셔도 될 것입니다..

미신이 무엇인지...풍수지리학이 무엇인지...잘 알지도 못하는 분들이 괜히 나서...
풍수가 미신이네...아니네 하고 ...설왕설래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지요...

서애 유성룡 같은 대 학자가 과연 우리만큼도 몰라서 ....
풍수지리가 미신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가지고 후손들에게 까지 이를 공부하라고 당부했을 까요?...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도 명당을 찾아 6~7번에 걸쳐 선조를 이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현대그룹을 앞서게 되었고 위와 같이 수차에 걸쳐 이장한 사실은 묘역 비문에 기록하여 누구나 현장에 가면 확인 가능하지요...

사람은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이라고 했든 가요......
작성일:2010-10-06 03:27:22 175.203.2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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