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 오피니언] 치타슬로우 고산
[당진신문 오피니언] 치타슬로우 고산
  • 당진신문
  • 승인 2019.04.06 08:30
  • 호수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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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미 시인,수필가
이종미(시인,수필가)
이종미(시인,수필가)

복잡한 시가지를 벗어나자 매끈한 장어 몸매를 닮은 왕복 4차선 도로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내일도 모레도 변함없이 이 길은 나를 품어줄 것이고 임무를 마치는 그날까지 나는 달릴 것이다.

소나무 가로수가 온몸으로 반긴다. 뾰족한 잎에도 면이 있다는 듯 이른 봄볕을 쪼물쪼물 주물러 지나가는 자동차에 한 아름씩 선물한다. 5분 정도 달렸을까. 길동무 아가씨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오른쪽 길로 빠졌다가 곧바로 왼쪽 길로 돌아가란다. 아쉽지만 고분고분 그녀의 말을 따랐다. 

보이는 것은 산, 나무, 흙, 바람과 띄엄띄엄 자리 잡은 몇 채의 농가뿐이다. 구불구불 에스 자를 그리는 길에 잊을만하면 과속방지턱이 있어 씽씽 달리던 애마도 고산으로 들어가는 길목  부터 ‘천천히’를 실천한다. 어릴 때나 반백 살을 넘긴 지금이나 산이든 들이든 깊어질수록 근본 모를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은 삶에 대한 애착이지 싶다. ‘여보세요, 거기누구 없소’ 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때 목적지가 부근이라는 길동무 아가씨의 목소리가 생뚱맞다. 학교 앞이라면 의례히 문구점, 떡볶이 가게 정도는 있지 않을까. 공부방, 게임방은 고사하고 학생들이 깃들어 살만한 주택 단지도 없다.  

인적 드문 이런 들판에 설마 학교가 있을까. 논과 밭 사이 개울물 흐르고, 띄엄띄엄 서너 채의 가옥이 인형 눈알처럼 박혀있는 이 길 끝에 고산초등학교가 있단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가니 옛이야기 품었을 듯싶은 학교정문이 나타난다. 아이들 안전을 위해 직진하지 말라는 듯 정문 앞에 말뚝이 박혀 있다. 운동장 너머로 보이는 교사(校舍)가 마치 바다를 수놓은 섬 같다. 얼른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구불구불한 벚나무길 따라 조금 더 나가자 담벼락 중간을 뚫고 자동차 한 대 드나들 정도의 출입구가 나타난다. 무작정 들어서자 제법 너른 주차장에 많은 자동차들이 어서 오라는 듯 기다리고 있다.

주인만큼이나 소심한 애마에게 앞으로 어울릴 동무들을 소개시킨 후 교무실로 가기위한 출입구를 찾다가 멈칫했다. 주차장과 통하는 출입구가 시골 구멍가게에 달린 출입문보다 나을 게 없다. 고개를 숙여야 드나들 수 있는 쪽문이지 뭔가. 첫 방문인데 쪽문으로 들어갈 수 없지. 왼쪽으로 건물을 반 바퀴 에돌아 굳이 너른 여닫이문으로 들어갔다. 

근무환경이 변하니 이해의 평수가 자꾸만 쪼그라든다. 함께 근무할 직원들의 이름도 외우기 전에 겨울 방앗간에 참새 떼 몰려들듯 업무는 왜 그렇게 날아드는지. 방금 다녀간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처리한 업무를 누구에게 전달할지 아리송하다. 작은 학교, 많지 않은 직원이지만 바뀐 사람은 나 하나뿐. 나의 낯섦을 이해해 줄 사람 없어 보여 쪼그라든 마음으로 이월 마지막 한 주를 그냥 깡으로 버텼다.

정신줄 놓고 한 주를 보내니 3월 개학날이다. 다른 정신줄 다 놨어도 우리 반 5학년 열 명의 이름과 가정환경을 자다가 깨어나도 소리칠 만큼 달달 외워뒀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버스를 이용하여 등교한다. 한 명 한명과 인사를 나누려던 내 생각과 달리 열 명이 한꺼번에 내 앞에 도착했다. 왁자지껄 떠들썩할 줄 알았는데 한 줄로 들어선다. 호기심 어린 표정, 순진해 뵈는 눈빛, 하나같이 맑고 밝다. 이름 한 번 듣고 얼굴 한 번 봤을 뿐인데 누가 누구인지 척하니 알겠다. 마음을 가다듬고 한 명 한명씩 눈을 마주치자 담임이 엄마선생님이서 너무 좋단다. 꾸며낸 말이든 눙치는 말이든 쪼그라든 마음에 훈풍이 들어 풍선처럼 두둥실 하늘을 난다. 낯섦이 저 멀리 달아난다.

살아가는 내내 편견이라는 단어를 멀리하려고 무장 노력했다. 직접 경험하기 전에 누구의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 했다. 누군가가 실수하면 상황파악을 먼저 했다. 내 딴에는 그렇게 노력했건만 고산초에서 미처 버리지 못한 편견을 발견했다. 엄마나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표정이 어두울 거라는 편견, 부모 손길 적은 아이들은 질서의식이나 정직과 양심이 엷을 것이라는 편견이 그것이다.

점심 식사 후 양치하러 세면대에 갔다. 저학년 학생 두어 명이 이를 닦는 내내 고학년 학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통제하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도 슬쩍 밀어붙이거나 눈 한 번 크게 흘길 만도 하건만 그런 학생 하나 없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정수기 앞에서도 복도에서도 인사와 질서는 자율로 지켜지고 있었다. 칫솔질하는 아이들 사이로 팔을 뻗어 물만 살짝 묻히려던 내 손이 창피한지 슬그머니 내려온다. 그들 뒤에 나도 섰다.

수학과 영어 과목에 대한 자신감은 떨어져도, 엉뚱한 답을 큰소리로 말한 후 멋쩍게 웃을지라도. 수행평가 점수가 깎이는 한이 있어도 내가 확인할 수 없는 것까지 정직하게 보고하는 아이들. 담임이 아직 수저를 들지 않았다고 배고픔을 참아내며 기다리는 아이들. 자신들이 가장 맛있어하는 과자를 담임 입안에 넣어주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 ‘우리 반이 몇 명이더라’ 무심코 던진 질문에 열 한명을 외치며 담임도 껴주는 의리 있는 아이들.

‘빨리’와 ‘급하게’라는 단어를 주문하는 나에게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천천히’를 가르쳐 준 고산. 누군가와 비교하며 쟁취한 성장이 아닌 각자의 색깔에 맞게 고운 꿈을 키우는 고산초등학교야 말로 치타슬로 1번지가 아닐까*

*치타슬로(Cittaslow)-‘느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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