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베트남 축구의 신기원을 이룬 박항서
[오피니언] 베트남 축구의 신기원을 이룬 박항서
  • 당진신문
  • 승인 2018.12.19 10:10
  • 호수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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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범 수필가/전 교육공무원

[당진신문=김종범] 지난 12월 15일 밤 베트남은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10년 만에 스즈키컵 우승을 차지한 직후, 길거리는 응원단과 오토바이가 점령했고 거리마다 밤새 환희로 들끓었다. 도시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베트남은 열광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베트남은 온 국민이 축구대표팀 감독이라고 할 정도로 축구 열기가 뜨겁다. 그런데도 최근 상승한 국력에 걸맞지 않게 직전 축구대표팀 성적이 국민의 성원에 부응하지 못하여 베트남 축구협회는 대표팀 재정비에 나섰다. 베트남 대표팀 감독을 교체하는데 전 세계에서 300명 가까운 지원자가 응모했다고 한다. 축구팬들은 당연히 유럽 명장을 원했다. 하지만 베트남 축구협회는 선수들과의 호흡을 위해 아시아 명장을 뽑기로 했다. 그렇다면 일본 감독이 우선순위였는데, 문제는 베트남 대표팀의 전전임 일본인 감독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본 감독의 지도력에 의구심이 제기됐고, 결국 2002년 월드컵 4강 경력의 박항서 감독이 낙점됐다.

박항서 감독은 한국에서 축구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K리그에선 그를 찾는 구단이 없었고 창원시청에서 지도자 인생을 마칠 것으로 보였다. 그때 박 감독의 부인이 동남아시아쪽이라도 알아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고 마침 베트남에서 그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낙점한 것이다. 면접 때 박항서 감독은 작은 키를 어필했다고 한다. 자신이 키가 작기 때문에 키 작은 선수의 비애를 잘 알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베트남 대표팀은 작은 키가 고민이었기 때문에 박 감독의 작은 키 논리도 베트남 축구협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한몫했다고 한다.

박 감독은 2017년 10월 취임 후 2달 만에 극적인 반전을 일으켰다. 베트남의 숙적은 태국이었다. 태국을 이기고 동남아시아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염원이었는데, 무려 10년 동안 태국을 이기지 못했다. 동남아시아 대회는 2008년 최초 우승 이후 결승전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런데 박항서 감독이 부임 2달 만인 2017년 12월 M-150컵에서 태국을 2-1로 눌렀다. 이때부터 박 감독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에 기적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출발은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호주를 누르고 결승에까지 진출했다. 한국을 4-1로 대파한 최강 전력 우스베키스탄과의 결승전에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연장전 혈투 끝에 1:2로 석패한다. 베트남 전역에 축구에 대한 열기가 달아올랐다. 동남아시아 대회 정도가 목표였는데 아시아 전체 대회에서 2위에까지 오른 것이다.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일본을 누르고 베트남 사상 최초로 4강에 진출한다. 또다시 엄청난 열기가 베트남을 뒤덮었다. 박항서 감독은 위인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이번, 대망의 동남아시아 대회인 스즈키컵 우승은 원래부터 베트남이 목표로 했던 대회였다. 앞선 아시안게임이나 23세 이하 대회가 연령제한이 있었던 데 반해 이번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국가대표팀들의 혈전이라는 점, 그리고 앞선 대회들이 모두 베트남 밖에서 펼쳐진 데 반해 스즈키컵 결승전 마지막 경기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국립경기장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기대가 절정에 달했다. 박항서호는 거기에서 2018년 역사의 마침표를 찍었다. 자국민들 앞에서 동남아시아 최강의 대관식을 거행한 것이다. 베트남 기자가 ‘태어나서 처음 본다’고 할 정도의 열기가 대단했다. 1월부터 12월까지,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 한 해였다.

황금기를 맞이한 베트남의 축구 열기는 한국 축구의 2002년을 떠올리게 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개최국 한국에 기적 같은 대회였다. 2001년 사령탑으로 부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의 본선 첫 승리와 첫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리고 강팀들을 나란히 격파하더니 4강 진출이라는 역사를 썼다. 당시 한국은 온통 축구 열기로 물들었다. 국민의 축제였다. 수많은 축구팬들이 응원을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히딩크 감독은 영웅 대접을 받았다. 당시 수석코치를 맡았던 게 바로 박항서 감독이다.

박 감독의 '파파 리더십'이 베트남 국민들에게 주목 받았다. 박 감독은 세대 차이가 나는 선수들에게 형님처럼 다가선다. 아시안게임 기자회견에서도 선수에게 직접 물을 건네고, 등을 다독이는 등 인자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선수가 아플 때는 직접 의무실을 찾아가 마사지를 하기도 한다. 선수들은 이런 박 감독을 아버지처럼 따른다. 권위적인 리더십보다 부드러운 리더십이 각광 받는 이 시대에 걸맞는 감독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에 대한 우호 감정도 폭발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선 베트남 청년들까지 나타났다.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 명의 축구감독이 베트남 역사의 한 장을 쓰고,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관계에도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다. 거기에 박 감독의 인생역전 신화가 통쾌하고, 베트남 선수들의 분투가 감동을 준다. 최근 국내문제로 답답하던 국민들 속을 풀어준 유일한 이슈이기도 했다. 박항서 신드롬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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