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상록수 남자모델 심재영의 공동경작회 야학당상록학원

심재영
심재영

[당진신문 기획연재] 선생께서는 1930년 5월, 19세에 낙향하시어 일제강점기이 황폐된 농촌, 기아상태의 농민을 돌보시고 농촌을 잘 살게 하는 것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는 일념으로 농촌계몽을 시작하셨고 84세에 작고하시기까지 당진 부곡리를 지키며 사셨다.
부친께서 관여하셨던 상록수운동과 농촌계몽운동의 역사를 간단히 소개한다.


1930년 충남 당진 부곡리로 낙향하여 야학당과 공동경작회 시작.
1932년 심훈선생 당진 부곡리로 이주.
1940년 일제의 탄압으로 야학당 공동경작회 폐쇄.
1962년 상록학원 개원에 참여 원장.
1974년 당진시 상록탑 건설에 참여.
1958-1995 상록초등학교 개설과 발전에 참여.
1995-4월에 작고하심.


심재영 선생은 현 서울시립대의 전신인 경성농업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4월, 19살에 인천항 발동선을 타고 충남 당진 부곡리로 내려온다. 선생이 내려 올 때에 들고 온 몇 권의 책 가운데 기미년 상해에서 발간된 ‘신한 청년’ 잡지가 있었다. 이 책의 겉장에 그려진 태극기와 수록된 애국가, 독립선언서는 선생과 공동경작회가 전개하는 농촌운동의 심볼이 되었다.

선생은 부곡리 청년 12명과 함께 지도체계를 조직화하고 스스로 논농사를 지어 수입을 사업기금으로 충당하고저 공동경작회를 만들었으며 1935년 공동경작회에서 야학당을 건축하였는데 당시 심훈선생이 상록수 당선금 500원 중에서 100원의 후원금으로 완공하였으며 주요사업으로 다음과 같이 4가지 사업을 진행하였다.

공동경작회 회원
공동경작회 회원

첫째로 답작, 면화, 채소로부터 각종 작물 전반에 걸쳐 종자개량에서부터 비배관리, 병충해구제, 축산으로는 양재, 양돈, 축우, 생사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농사개량에 힘썼다.

둘째로 이용조합을 조직하여 개인적으로 갖추기엔 부담스러운 타면기를 빌려주기도 하였다.

셋째로 부곡리의 신생활운동을 추진하였다.

넷째로 야학당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심재영 선생을 비롯한 공동경작회 회원들은 그들이 모이거나 아동들이 모였을 때 애국가를 터놓고 부를 수가 없어 애향가를 불렀는데 심훈선생이 가사를 애국가 곡조에 맞춰서 불러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가사만 외우면 부를 수 있었다.

심재영 선생은 1930년 봄, 열아홉의 나이로 당진에 내려온 뒤,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으며 심훈선생이 떠난 뒤에도 여전히 이곳에 남아, 내 고향을 위해 일하셨다. (상록수 제12호 심재영의 장남 심천보의 글에서 발췌)


야학당을 개보수하여 개원한 상록학원과 자취를 감춘 상록학원

야학당을 개보수하여 세운 상록학원
야학당을 개보수하여 세운 상록학원

야학당 상록학원은 1960년대, 당진군4-H연합회와 당진군감리회청년연합회가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면서 우리고장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창출물로 심훈선생이 상록수를 집필한 필경사와 공동경작회에서 건축한 야학당이 누구하나 거들떠보지 않고 폐허되어 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이를 다시 개보수하여 보전하기로 합의하였다.

특히 당진4-H활동과 당진기독농촌활동의 특수성과 상록수농촌활동 특수성을 접목하여 전문화된 한국농촌운동의 방향을 찾기로 하였다.

1962년 3월 1일, 당진군4-H연합회와 당진군감리회청년연합회에서 공동주최하는 3.1절 기념행사에 민족지도자 함석헌옹을 초대한 강연회에서 상록수주인공을 양성하는 상록학원설립위원 30여 명의 이름으로 취지문을 발표하고 당진군 청소년들이 4개월여 기간 야학당을 개보수하여 1962년 7월 25일, 상록수주인공을 양성하는 상록학원을 개원하였다.

야학당 개보수공사는 당시 당진군내 자연부락단위 100여 개의 4-H구락부와 당진군내 감리회 40여 개 청년회원들과 당진여고생들은 점심도시락에 쌀을 모아 토요일 마다 봉사활동을 하고 일간 신문기사를 보고 찾아왔으며 결혼패물 등을 크고 작은 성금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공동경작회 회원 8분이 생존해 계시며 우리활동을 지켜보셨고 심재영 선생을 상록학원 원장으로 모셨다.

그동안 야학당 보수공사 경과보고를 보면 총공사비 90,000원. 부채 5,000원. 총작업인원 549명. 결혼패물 금반지, 금비녀, 청소년들 10~20원. 우편후원금. 각종 비품, 책상, 걸상 등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야학당상록학원이 관리자의 실수로 자취를 감추게 되어 그 터에는 ‘상록학원 엣터’라고 높은 장대가 외롭게 서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철렁 내려않는 듯한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어 속히 상록학원이 복원되어야 한다는 시민의 소리가 일고 있다.


4. ‘그날이 오면’ 영화제작 발표... 심훈의 혼불과 온겨레의 기미년 함성 100주년을 맞이하여

2019년 3월 1일은 기미년 대한독립만세! 온겨레의 기미년함성과 ‘그날이 오면’ 심훈의 상록수혼불로 8.15광복과 조국근대화로 새역사창조의 뿌리가 된 3.1운동 100주년을 맞게 된다.

(사)심훈상록수기념사업회는 100주년이 되는 이날을 새기며 온 겨레가 우리의 소원 한류통일문화를 형성하고저 ‘그날이 오면’을 내용으로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제작을 하기로 하고 지난래 2017년 12월 13일 당진문예의전당에서 영화제작발표회를 가졌다.
‘나나나 상록수되어 한그루 3천원 심기’ 세미나를 하고 전국 각지에서 추대 선발한 농촌운동가 30명을 추대하여 시상하고 출연배우들과 시민들이 참석하여 ‘그날이 오면’ 영화제작발표를 가졌다.

그동안 영화제작 예산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에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회에 모든 자료를 제출하여 남,북연예인들과 함께 ‘그날이 오면’ 영화제작 사업을 추진하기를 제안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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