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 오피니언] 안희정 판결을 보면서
[당진신문 오피니언] 안희정 판결을 보면서
  • 당진신문
  • 승인 2018.09.13 13:56
  • 호수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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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내영 어린이책시민연대

[유내영] 대학 시절 테니스동아리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테니스를 치러 갔다. 워낙 운동을 좋아했던 나는 테니스를 배우는 것이 참 좋았더랬다. 처음 배우는 테니스는 폼이 중요하다면서 선배들은 한 달 넘게 폼만 연습하게 했다. 폼 연습이 끝나고 공을 칠 생각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다.

하나 둘 셋 넷! 구령에 맞춰서 신입생들은 라켓을 손에 쥐고 폼을 연습했다. 남자 선배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다가와서 라켓을 든 손을 잡고 교정해 줬다. 뒤에서 몸을 교정해 줄때도 있었는데 훔칫 놀라 앞으로 몸을 빼면 ‘내가 잡아먹기라도 하냐?’하면서 웃었다. 그 웃는 모습이 징그럽고 싫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고? 웃는 얼굴 때문이 아니라 선배라서 참았다.

주변에 있는 선배들, 신입생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얼마나 수치스럽고 창피한지 숨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 뒤 오히려 더 아무렇지 않게 연습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폼을 연습할 때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고, 주위를 살피게 되었다. 혹시 그 모습이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했다.

특히 테니스를 치고 난 후 교정 잔디밭에 모여서 막걸리를 마시는 날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할 지 막막해졌다. 그렇다고 안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불참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 마음을 함께 하는 여자 신입생에게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마치 내가 무엇인가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했고, 그 선배의 순수함을 ‘몰라라한 죄’를 지은 것 같아서였다.

이번 ‘미투운동’을 접하면서 30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특히 안희정의 사건은 망설였고, 말하지 못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던 나의 과거가 오버랩됐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김지은씨가 땅을 쳐다보면서 ‘싫어요’했다는 그 상황이 가슴이 찢어지는 먹먹함으로 다가왔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주변의 꽤 많은 사람들이 안희정을 걱정했다는 점이다. 안 전지사가 정치적으로 매장당했다면서 그를 다시 재개할 수 없도록(희망일까?) 만들어놓은 김지은을 욕한다. 그렇다면 권력자에 의해 철저히 짓밟힌 김지은의 인생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안희정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피해자인 김지은이 아니라 국민에게. 덧붙여 그것은 사랑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불륜으로 포장해서 법망을 피하려는 꼼수로만 읽혔다. 그래서 나는 공정한 법의 잣대가 행해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안희정은 무죄! 뒷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힘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여성이라서 김지은의 행동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아니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대학까지 나온 배운 여자라서 안희정이 무죄라는 것이다. 이 개떡 같은 판결에 대해, 소위 진보를 자처하며 법에 대해서도 전문가라고 떠드는 사람들은 현행법 핑계를 대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법 이전에 최소한 윤리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판결에 대해 불편하고 화가 난 상황에서, 정희진씨가 경향 신문에 쓴 <‘안희정 무죄’의 세가지 위력>이라는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위력이라는 것이 피해자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가해자인 안희정의 말을 재판부가 해석함에 있어서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수 있을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나는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사회적인 사회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성에 대해 당당하게 할 말 하면서 살길 바란다. 나를 포함해 현재 한국의 여성들이 이 곳에서 당당하게 살지 못하는데 어찌 다음 세대의 여성들이 잘 살 수 있기를 바랄 수 있을까? 이런 나의 바람이 그들에게 또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사회에서 남성연대가 이처럼 공고하고 탄탄한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내 생각이 참 어리석고 순진했음을 안희정 판결을 보며 확인한다.

내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지 않는 한, 내가 바라던 세상이 오지 않는다. 그동안 여성들 사이에서도 금기시 되어왔던 여성의 성을, 나는 여성으로서 나는 당당하게 말할것이다. 성을 공론화시켜서 양지의 세계로 끌어올리는데 작지만 나의 힘을 보탤 것이다.

남성은 성욕이 강하고, 여성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에 반기를 들 것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적욕구는 각기 다 다르다는 것을 말 할 것이다. 또한 여성이든 남성이든 누구든 타인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면 안된다. 이 세상에 폭력을 당해도 되는 사람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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