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만세 들불처럼 타올라 전국을 뒤덮다!!
독립만세 들불처럼 타올라 전국을 뒤덮다!!
  •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승인 2018.04.16 09:51
  • 호수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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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렇게 1919년 3월1일 식민지 조선 경성 한복판에서 시작된 독립선언과 만세시위는 한 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당장 3월1일 경성에서의 만세시위와 때를 같이하여 평양, 안주, 진남포, 의주, 선천, 원산 등 서북지방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렇듯 서북지방 곳곳에서 신속하게 만세시위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서북지역 기독교 장로회 활동과 관련이 깊다. 정주의 이승훈을 중심으로 한 서북지역 기독교 장로회는 3월1일 독립선언에 이승훈 등이 민족대표로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성에서 발행한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서북지방 곳곳에 배포하였다.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서북지방의 독립운동가들도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을 발표하는 시각에 맞춰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하고, 서북지방 곳곳의 모든 역량을 모아 3월1일 오후2시에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경성과 서북지방에서 시작된 독립만세 시위는 1919년 3월1일 이후 독립만세운동으로 발전하여 급속히 전국에 퍼져 나갔다. 이후 경성시내에서는 매일 독립만세 시위가 이어졌고, 3월5일에는 경성시내 고등보통학교 이상의 학생들이 주도하는 대규모 독립만세시위가 남대문역에서 시작되었다. 서북지방의 시위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 날로 규모가 커져갔다.

이렇게 경성과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이어지던 독립만세시위는 3월3일 이후에 점차 전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여 충남에서도 일어나게 되었다. 충남에서의 독립만세시위는 예산과 대전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대전에서의 시위는 대전 인동 장터에 땔나무를 제공하던 나무꾼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는데 이는 3.1혁명의 특성이 남녀노소의 차이뿐만 아니라 귀천의 차이를 넘어 함께 싸웠다는데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급속히 전파될 수 있었던 요인은 천도교와 기독교의 조직망을 통해서였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고종의 국장을 보기 위해 상경했던 인사들과 유학생들의 귀향을 통해서였다. 그 중 무엇보다 학생들의 역할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경성에는 전국 곳곳에서 유학 온 수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이들은 3월1일 파고다 공원에서 열린 독립선언식과 3월5일 남대문역 학생 독립만세 시위에 대거 참여하였다.

이렇게 경성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소식은 일제에 의해 자녀의 장래를 걱정하는 부모들을 움직여 유학생 자녀들을 귀향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재경 유학생들의 귀향은 시위 참여자의 증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일제 당국에게는 더없이 바라는 바였다. 하지만 경성에서의 시위 참여를 막기 위해 보낸 유학생들의 귀향은 역설적이게도 경성에서의 독립선언을 전국으로 퍼트리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유학생들의 귀향과 만세시위 소식의 전파는 나라 잃은 조선민중의 독립에 대한 희망과 열망이 결합하면서 3.1혁명이라는 위대한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독립만세 시위의 양상은 대부분 독립선언을 하고 만세를 부르는 등 단순히 독립을 요구하는 비폭력적이고도 평화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제는 이러한 비폭력 평화적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과 헌병 이외에도 용산에 주둔하고 있던 보병 3개 중대와 기병 1개 소대의 전투병까지 동원하였다.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평화적 시위 군중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체포하였다. 얼마나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는지 단순히 조선독립만세를 따라 불렀다는 이유로 체포하였고, 심지어는 시위대가 아닌 주변을 지나는 행인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독립만세시위는 3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시위의 양상이 점차 과격하게 전개되기에 이른다. 대표적으로 평북 의주군 옥상면,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및 원곡면 등 일부지역에서는 경찰 및 헌병분소를 습격하여 투석하는 등 과감한 시위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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