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高山)
고산(高山)
  • 당진신문
  • 승인 2018.01.29 10:12
  • 호수 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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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윤 교수
고산의 고산사에 있던 부도
고산의 고산사에 있던 부도

창택산 봉화와 응하던 고산 봉화가 있던 곳
최근에 고산아래 하천에서 고산사 부도 발견

당진지역은 삽교천을 끼고 있는 합덕이나 우강의 소들강문(牛坪江門) 평야지대를 제외하고는 비산비야지로 낮으막한 산들이 올망졸망 입지하고 있다. 당진에서 제일 높은 산인 아미산을 비롯하여 망객산, 석문산, 창택산, 석화산, 둥군봉, 자모산, 은봉산, 이배산, 고산봉 등 많은 야산들이 입지하고 있다.

고산(高山)은 당진 서북부 고대면에 위치한 해발 154m의 야산으로 고산봉(高山峰), 봉화산(烽火山) 이라고도 부른다. 고산은 주변의 고대 평야 한가운데에 솟아있어 산 높이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멀리서 보면  제법 높게 느껴져 ‘높은 산’ 이란 의미의 고산(高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당진 편에는 ‘봉화 하나가 당진현의 북쪽 고산에 있는데 동쪽으로는 면천의 창택 봉수와 남쪽으로는 해미 안국산 봉수와 응한다’라고 되어있다. 창택 봉수는 현재 송산면 창택산이고, 안국산 봉수는 현재 정미면 안국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당진 편에도 ‘고산이 당진현 서북쪽 22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당진 편에도‘고산이 관아의 서쪽 20리 지점에 있다. 덕산 가야산에서 왼쪽으로 떨어진 해미 봉생산(鳳生山)에서 줄기가 뻗어온다’라고 기록되어있다. 또한 봉수(烽燧) 조에 보면, ‘고산 봉수 동쪽으로 면천의 창택 봉수에서 신호를 전하며, 남쪽의 해미 안국 봉수에서 신호를 받는다. 서북 쪽은 바다이다. 관아의 서쪽 30리에 있다’라고 되어있다.

해동지도(海東地圖) 당진 편에도 고산면과 고산봉대(高山烽臺)가 묘사되어있다. 1872년 지방지도(地方地圖) 당진 편에 고산봉이 묘사되어 있다.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와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유사한 고산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옛 고산면 지명도 이 고산에서 유래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당진 편에도 ‘고산이 고산면 고산동에 소재하고 군 서쪽 30리에 덕산의 가야산이 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전에는 미군 미사일 부대가 주둔했으나 현재는 철수하고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다.

원래 고대면은 당진군 하대면, 상대면, 고산면 등이 1914년 일제가 전국 군읍면리의 통폐합시 생겨난 면이다. 고산면명은 면소재지에서 제일 높은 봉화가 있는 고산(高山)에서 유래했다. 이 당시 고산면(高山面)에는 삼거리, 장항리, 선교리, 속사리, 성산리, 작동, 만길동, 당진포리, 사동, 고산동(高山洞), 개정리, 옥현리 등 12리가 있었다. 지금도 이 당시의 고산동이 당진포리(唐津浦里)에 속하는 고산동 자연마을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고대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3-4km정도 달리면 당진포리의 절안 마을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 옛 고산사지가 있다. 고산봉 남쪽 산록에 조선 초기에 창건된 고산사(高山寺)라는 큰 절이 있었다. 지금도 고산사 절터가 교란된 채 산록에 있다. 고산사에 있던 부도(浮屠) 1기가 10여년 전에 절터 아래 하천 속에서 발견되어 현재는 합덕 수리박물관에 옮겨다 놓았다.

당진 지역에는 고대의 영랑사에 부도가 유일하게 1기만 있었는데 고산사 부도가 발견됨으로 총 2기가 되었다. 그 당시 고대면의 영랑사와 고산사가 역사가 깊은 당진지역에서 가장 큰  유명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당진현 불우조에 보면 ‘고산사가 고산에 있다’라고 기록되어있다. 고산 남서쪽 당진포리 827번지 김영덕 씨 집 뒷동산이 옛부터 절터라고 알려져 왔다. 약 1천여평의 넓은 절터에서는 기와장, 분청사기, 백자편이 무수히 널려져있다. 높이 20cm, 가로 60cm, 세로 40cm  정도 크기에 문양이 새겨진 다듬어진 돌이 박혀있다.

현재는 이 돌과 함께 여기서 출토된 부도 1기와 함께 합덕수리 박물관에 옮겨 보관중이다. 출토되는 와편은 회록색의 투박한 경질인데 시문(施文)된 문양으로 가는 선조문과 무문이 주류이며 간혹 가는 어골문(魚骨文)도 보인다. 백자편은 청백색으로 모래번조에 의한 것인바 굽은 형식화되어 낮은 편이다. 이들 유물은 대체로 조선 중기의 것들이다.

국가 관찬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발행)의 기록으로 보아 고산사는 조선 중종(中宗) 이전의 시기에 초창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 말기까지 운영되다 폐찰된 것으로 보인다. 약 5백 여년전 절이다. 사역은 고산봉 남서쪽 중턱에 평탄하게 대지를 조성하고 대형의 석재를 이용하여 1단의 축대를 쌓았는데 대략 400평에 달하는 건물을 조영하고 남서쪽을 향한 것 같다. 현재 사역은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민가 1동과 민묘 1기가 있다. 백자편 외에도 돌절구, 부도도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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