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
  • 이선우 객원기자
  • 승인 2017.12.11 12:57
  • 호수 118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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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딸을 둔 엄마는 언제고 딸의 sos를 받아주셨다.

엄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그보다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 또 있을까

갑작스런 부고를 전해 들었다. 며칠 전 온 식구가 모여 담근 김장김치며 푹 고아 삶은 한우사골국이며 트렁크 가득 싣고 서울 큰댁에 올라가려던 부모님에게서 전해진 비보였다. 엄마의 형님이자 지난 세월 미운정 고운정 똘똘 뭉친 전우애로 함께 살아온 큰어머니의 부고.

어린 시절 내가 본 큰어머니는 서울깍쟁이였다. 겉으론 괜히 미워하는 척 했지만 속으론 동경하기도 했던 것 같다. 대학 입학시험을 보겠다고 서울에 올라온 촌뜨기 조카를 하루 저녁 재워주고 고사장까지 직접 운전해 데려다주신 기억도 난다. 결혼한다고 친정에 함이 들어오던 날에도 함께 박수를 쳐주셨고 결혼 후 첫 집에서도 (음식은 대부분 엄마가 들고 올라오셨고) 내가 차린 상을 받으셨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에 함께 하며 격려하고 지지해주던 가족이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차에 실린 짐들을 미처 내려놓을 겨를도 없이 그대로 장례식장으로 올라가신 부모님. 장례식장에서 만난 엄마아빠 얼굴이 반쪽이 되어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이후로 처음 보는 안색이다. 팔 한쪽을 잃은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고, 낮은 목소리로 간신히 말하는 엄마에게 나는 ‘내일 모레 저녁에’ 아이들을 봐줄 수 있겠냐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엄마 힘들텐데 애들 잠깐 봐줄 수 있겠어?” “그럼, 몇 시에 끝날지 모르니 전화하고 와.”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가 필요한 순간들이 많아졌다. 서울에서 첫째를 낳았을 때는 아예 친정에 한 달을 맡겨놓고 일요일에나 잠깐씩 가보면서 일을 한 적도 있다. 당진에 내려와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을 할 때는 아이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우리집으로 출근을 하셔야 했다. 일하는 딸을 둔 엄마는 언제고 딸의 sos를 받아주셨다.

음식 만드는 일이며 살림 따위 서툰 딸에게 잔소리 대마왕처럼 군림하기도 하지만 김치며 국이며 밑반찬은 물론이요 딸 눈에서 눈물이라도 흐를까 대파까지 직접 썰어 담아주신다. 옷 사 입는데 취미가 없는 후줄근한 딸 모습이 항상 마음에 걸리는 엄마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옷을 입어야 하는 곤욕을 치루기도 한다. 엄마가 나에게 하듯 내가 내 자식에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걸 깨닫는데 몇 초 걸리지도 않는다.  

며칠을 장례식장에서 보내고 돌아온 엄마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말았다. 엄마를 좀 쉬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내 일정을 포기했다. 당연히 그리 했어야 할 일을 마지막에서야 결정하고 나니 마음은 편해졌다. 허망하게 떠난 큰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니 엄마 생각을 더 하게 된다. 엄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그보다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생각하다 그만 펑펑 울고 말았다. 나에게도 멀지 않은 그 이별이 다가왔을 때, 엄마 없이 살아가야할 내 딸이 눈에 밟혀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