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는 데서 유래

禮記(예기) 단궁상편에 나오는 말이다. 은나라 말기 강태공의 이름은 呂尙(여상)이다.


그는 위수가에 사냥 나왔던 昌(창)을 만나 함께 주왕을 몰아내고 周(주)나라를 세웠다.


그 공로로 營丘(영구)라는 곳에 봉해졌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


하지만 그를 포함하여 5대손에 이르기까지 모두 주나라 천자의 鎬京(호경)땅에 장사지내졌다.
이를 두고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군자가 말하기를 “음악은 그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바를 즐기고 예는 그 근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였고 옛 사람이 말하기를 “여우가 죽을 때 언덕에 머리를 바르게 하는 것은 仁(인)이다”라고 하여 수구초심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할 때 쓰인다.


여우는 구릉에 굴을 파고 사는데 죽을 때는 장소가 어디든지 그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구릉 쪽에 둔다. 이것은 곧 그 根本(근본)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성어는 그 근본을 잊지 않는 것 또는 절실히 그리는 향수 등을 일컫게 되었다.

<자료제공 : 장원한자 당진지점 문의 ☎ 358-0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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