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학교수협의회장 김영한

경로당은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일을 겪고 살아온 인생 중에 기운이 펄펄 넘치고 생각이 잘 돌아가던 시절이 이미 다 지나가고 피곤한 인생에 편안히 쉴 곳이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나 할까?

그 분들을 즐겁고 편안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회장의 몫이 아닐까? 그러려면 무엇보다는 덕(德)이 아닐까 한다.

德은 人間이 인간 수준에서 인간으로서의 品位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근거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根本 동력이자 자기 自身을 자기 자신으로 만드는 內面의 힘이다. 人格의 원천이다. 재주는 외부를 향하지만 덕은 자기 내면을 향하는 집요한 응시로 회복된다. 창의성이나 상상력 등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발휘되는 것이라고 할 때, 그것들이 발휘되는 인격적인 토대가 바로 덕이다. 이 덕이 작동되는 사람에게는 그 깊이로부터 우러나는 향기가 발산되고 그 향기가 감화력을 갖게 해준다. 그래서 孔子도 德이 작동되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반드시 그 향기에 감화되어 따르는 사람들이 있게 된다고 하지 않은가. 그래서 덕이 있는 사람이 매력이 있고 그 매력이 강한 카리스마를 만들어 지배력을 갖게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덕이 준비될까?

부모님과 조상에 대한 제사를 정성으로 치르면 덕이 두터워 진다는 뜻이다. 人間의 가장 根本的인 동력을 두텁게 하는 일을 말하라 치면 뭔가 추상적이고 위대한 명제가 나올 것 같은데 전혀 아니다. 아주 간단하고 구체적인 일상의 삶 일을 잘 관리하는 힘이 있는 면 그것이 바로 덕이 표현이 된다. 그것이 구체적 세계와 그에 대한 접촉 수준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한 덕이 없다는 사실도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하찮은 소문을 여기저기 옮기고 다니는 것과 같은 그 행위를 덕이 없다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덕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는 것이다. 덕이 우러나는 사람은 넓고 근본적이지만, 재주를 발휘하는 대개가, 자신만의 생각(이념)이나 지적 체계에 갇혀 좁고 고집스럽다. 孔子는 이런 사람은 덕을 망치는 일이라고 말씀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좁다한 (작은 경로당) 집단 내에서 형성된 단편적인 명성과 시각에 갇혀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끌고 가며 원래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덕은 주변으로부터 밀려 나가게 될 것이다. 오직 덕을 발휘하지 말라고 했듯이 이렇게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런 사람들에게 휘둘려서도 안 된다. 인간의 근본적인 동력으로서의 덕을 가진 사람은 결국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사회적으로 등장하면 비로서 市民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고 한다. 사회적 책임성을 다른데서 따지지 않고 먼저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구하는 사람이다. 남을 탓하거나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는 민감성을 유지한다. 거대 이념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리기 보다는 우선 일상생활을 자기 통제권 안에서 지배해야 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경망스럽지 않고 진중한다. 화를 내지 않는다. 덕을 가진 시민은 지적 민감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믿고 있는 이념을 설파하지 않고 구체적 세계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문제를 발견 할 수 있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일이고 창의적인 기품의 출발점이 되고 참 좋은 德의 향기라고 할까...

새해에는 덕(德)의 향기(香氣)가 풍겨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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