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큰 일 치러보니 형제가 최고여“ 

주말 이른 아침부터, 아니 새벽부터 양쪽 세면실이 시끌벅적 붐빕니다. 경기도 조카 결혼식에 가려고 밑에 지방에 사는 자매들이 중간지점인 당진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가서 기다리더라도 일찍 나서잔께.”

내년이면 환갑인 맡언니는 나이 들어 어차피 잠도 없는데다 흥분까지 했는지 새벽 3시부터 일어나 얼굴에 찍어 바르기를 시작해 집을 나서는 시점까지 마지막 분장을 잊지 않습니다. 태생이 까만 피부가 찍어 바른다고 나무 양판 쇠 양판 될 리 만무하건만 거울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최선을 다해 꽃단장을 합니다. 조카 결혼식에 예쁜 이모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랴, 주말이라 차가 밀려서 늦어불먼 워쩔것이여.”

평소에는 해보지 않은 마스카라를 해보겠다고 그렇잖아도 큰 눈을 치켜뜨고는 맡언니의 말에 셋째 언니가 동의를 표합니다. 교회에서, 직장에서 고상하기로 유명한 이 분은 형제들만 만나면 사투리 작렬, 언어가 구수해집니다.

“언니 혼자 있으믄 떨린께 후딱 가자고.”

평상시 충청도 사투리를 사수하다 형제들만 만나면 전라도 사투리로 급 갈아타고 기꺼이 동의합니다. 주말은 늦잠 자는 행복한 날이지만 그 행복 기꺼이 반납하고 새벽부터 대접하랴, 미용사 역할 하랴, 꽃단장 하랴 분주하지만 형제가 모처럼 모이니 그냥 좋습니다.

그렇게 여자들이 난리법석을 떨고 있는 중에서도 눈을 꾹 감고 잠을 사수하던 남자들은 의지에 상관없이 유별난 여자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앞장을 서서 나섭니다.

밀린다고 하더라도 한 두 시간이면 족히 가고도 남을 것을 그렇게 4시간 전에 출발합니다. 도로사정이 원활하여 식 3시간 전에 도착합니다. 아침 8시부터 화장을 시작해 이미 준비완료 된 혼주가 버선발로 달려 나와 맞아줍니다.

“우황청심환 먹어야 되나 싶었는데 이렇게 일찍 와서 형제가 옆에 있어주니까 마음이 너무 편안하다.”면서도 놓지 않고 잡은 손이 떨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면 본인이 시집가는 줄 알겠습니다. 당사자가 아니라서 그 마음 헤아릴 수는 없지만 생애 첫 혼주가 된다는 것은 참 많이 떨리는 일인가 봅니다.

“우리 그냥 날도 더운데 한복 입지 말고 이렇게 정장 입으믄 안될까?”

“불편해도 꼭 입어줘.”

“예, 충성!”

그렇게 혼주의 간곡한 부탁에 형제들은 하나같이 동남아 스타일의 까만 피부에 그닥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한복 곱게 차려입고 나란히 줄을 서서 손님을 맞습니다.

”보기 좋다야!“

고모 삼촌들 및 친지들의 칭찬이 이어집니다. 앞서 식을 마친 가족을 지켜보니 한복 입은 사람이 없으니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우중충합니다. 불편하지만 한복을 입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촬영하는데 양가 모두 한복을 입어 화려합니다. 역시 우리옷이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온 가족이 약속이나 한 듯이 잠을 잡니다.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혼주로부터 도착한 메시지를 봅니다.

“큰 일 치러보니 형제가 최고여. 우리 지금처럼 사랑하고 함께 오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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