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꽃밭 기획연재-5
'모두에게 배웠어'를 읽고
글/그림 고미 타로 , 출판/ 천개의바람

ⓒ삽화 박규섭
ⓒ삽화 박규섭

[그림책꽃밭 유은정] 고미 타로의 <모두에게 배웠어>를 신나게 읽었다. 걸음마부터 학교에서의 배움까지. 그리고 글을 쓰려는 순간, 막힌다. “배움은 무엇인가?” 너무 철학적인 질문 아닌가. 어렵다. 그렇다면 이건 말할 수 있지. ‘나에게’ 배움은 뭘까. 뭐 걸음마부터 숟가락 잡는 법, 라면 끓이는 법, 설거지 하는 법, 바느질 하는 법, 글을 읽는 법. 수없이 많은 걸 배워왔고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 

‘배움’은 모르다가 아는 것 혹은 안다고 착각했던 것을 정확히 알거나 깊게 아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뭐든 안 배운 게 없다.

  나의 엄마는 날 자유롭게 키웠다. 엄마에게 특별한 육아 방식이 있었던 건 아니다. 이게 다 큰 사고 때문이다. 여섯 살 꼬마는 혼자 놀이터를 가겠다고 길을 나서다 자기 몸의 백배 천배는 큰 거대한 트럭에 깔렸다. 사고로 이마와 얼굴 옆을 여러 바늘 꿰맸다. 6개월을 꼬박 병원에 입원했고, 의사는 가능한 한 머리를 쓰는 학습 행위 일체를 안 했으면 했다. 머리를 다쳐 후유증이 생길까 염려되어 그런 듯하다. 그래서 엄마는 그 흔한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한창 한글을 뗄 나이인 내게 “그저 건강만 해다오. 그걸로 충분해”라고 하셨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고도 1년은 더 지나서야 글자를 읽을 줄 알았다.

  우리 집에는 장난감이나 그림책이 없었다. 네 식구 몸 부비며 살던 문방구 단칸방에는 장롱과 엄마의 부업 도구인 타자기 책상으로 꽉 찼다. 더 이상의 짐을 들일 수 없었다. 공부시키지 말라는 의사 말에 더욱 책을 사들이지 않았다. 자연히 밖에서 놀 수밖에. 

골목길과 뒷산에서 동네 친구들과 오만가지 놀이를 해봤다.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손에 벽돌색 봉선화 물들이기, 술래잡기, 돌과 꽃으로 차리는 소꿉놀이. 알고 보면 엄마는 날 놀이 영재로 키우셨던 게 분명하다. 

학교에서 배운 건 별로 기억이 안 나지만 동네 골목길에서 놀았던 건 생생하다. 덕분에 친구와 어떻게 사귀는지 알고, 싸웠을 때 화해하는 법을 배우고, 돌과 풀과 꽃이 사계절 어떻게 피고 지는지 안다.

  우리는 모두 “원래부터 생각하고 배우는 걸 좋아한다”(25-26쪽). 나도 그렇다. 남들보다 느리지만 매일매일 배움을 멈추지 않는 아이로 컸다.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터득하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재밌었다. 그래서 11살 때 난생 처음 책(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을 혼자 끝까지 읽었을 때 ‘책도 세상만큼 재밌네’라고 깨달았다.

  고미 타로의 그림책 <모두에게 배웠어> 속 아이는 세상 다양한 친구에게서 감정을 느끼고 걷고 뛰고 냄새 맡고 맛보는 걸 배운다. 밤하늘을 보며 사색할 줄도 안다. 현실 속 우리네 아이들에게도 따분하지 않고 재미있고 설레는 배움이 가능할까. 

이제 곧 새 학기다. 교육 현장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아이들이 친구와 교사를 보는 시선에서 바라보면 건강하고 즐거운 배움이 아직 살아있을지 모른다. 

어릴 적 이미 우리도 몸으로 다 겪지 않았나. 모두에게 배울 줄 아는 유전자를 가진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건강한 갑진년을 보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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