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꽃밭 기획연재-4
'방귀쟁이 며느리'를 읽고
글,그림/신세정, 출판/사계절 

 

ⓒ삽화 신은미
ⓒ삽화 신은미

[그림책꽃밭 신은미] 그림책 <방귀쟁이 며느리> 표지 그림은 박물관에서 봤던 신윤복의 ‘미인도’ 같다. 미인도 속 여인이 뀌는 방귀라니. 항상 웃는 얼굴로 나를 기쁘게 해주던 책받침 속 아이돌그룹 HOT 오빠가 방귀 뀌는 상상을 해본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이 책 속의 여인도 그렇다. 미인도 속 여인이 그 당시 아이돌의 모습이라면 그림처럼 아름답게만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인은 살아 숨 쉬는 며느리로 존재한다. 그림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살아가야 한다. 부지런히 손과 발을 움직여 일을 해야 한다.  밥상도 차리고 설거지도 하고 바느질도 하면서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가끔은 방귀를 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새로운 가족이 된 어른들 앞에서, 신랑 곁에서 조금 다르고 비밀스러운 자신만의 특별한 방귀를 뀔 수가 없었다. 

사흘에 한 번씩 시원하게 뀌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방귀를 참기 시작했다. 뽀얗게 곱던 얼굴이 누런 메줏덩이가 되어버리고서야 시아버지가 묻는다. “우리 며늘아기가, 뭔 음식을 잘못 먹었는가, 뭔 병이 들었는가, 얼굴이 누우런 것이 영 거시기허구나” “아, 그런 것이 아니라... 방귀를 못 뀌어서 그라요” 며느리는 조심스레 말을 했다. “방귀를 참으면 쓰간디? 뀌어라, 뀌어” 

문제는 이 방귀를 새로운 가족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며느리는 솔직하게 자기의 모습을 보였지만 식구들은 이 방귀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들과 다른 방귀를 가진 특별한 며느리를 오히려 두려워한다. 그리고는 결국 그녀를 쫓아냈다.

하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외면하며 내치는 사람들을 향해 더 확실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래 나 니들과 다르다. 어쩔래? 이왕 이렇게 된 것 내 맘대로 살겠어’ 며느리는 입을 앙다문 채 미소를 지으며 장옷을 휙 벗어 던진다. 시원한 방귀로 배나무를 흔들어 놋그릇장수, 비단장수에게 갈증을 해소할 배를 따 준다. 마치 변신하듯 춤을 추며 신명 나게 방귀를 뀐다. 

축제 마냥 알록달록한 무늬들과 나무에서 떨어진 배들이 휘날리며 화면 가득 즐겁다. 사람들은 방귀에 날아가지만 며느리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다. 책을 보는 나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속이 다 시원해진다. 결국  며느리는 방귀로 비단과 놋그릇을 얻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받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방귀를 텄는지 안 텄는지로 관계의 친밀함을 가늠하기도 한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인데도 금기시되며 그것을 함께 공유하는 것은 가족 이상의 가까운 관계라고 여기곤 한다. 며느리의 방귀는 조금 달랐고, 특별했다. 새를 떨어뜨리고, 가마솥과 사람들을 날려버리고, 배나무의 배를 떨어뜨릴 정도로 강한 방귀는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는 자신의 한 부분이다. 

며느리는 남들과 조금 다른 자신의 모습을 편하게 보여주고 그것을 이해해주는 관계를 원했다. 모두가 그런 관계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순간 더 친밀한 관계를 원하면서도 나와 다르면 꺼리고 외면한다. 감당하기 어렵다며, 취향이 아니라며, 이상하다며 다른 이들의 방귀를 외면하는 날이 얼마나 많은지. 방귀를 참는 것처럼 내 모습을 숨기며 누런 얼굴로 사는 날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조금 더 솔직하게 나를 내보이자. 다른 이의 특별한 방귀도 웃으며 봐주자. 조심스럽게 필요할 때 가끔 방귀 트며 살아보자.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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