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동 원조 복조리마을 전통 잇기 ‘구슬땀’
복조리 수공예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이 소원

우리 고유의 농경문화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하나둘 사라져 가는 아쉬움이 크다. 특히 음력 1월 15일인 대보름날은 사람들 기억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복조리 걸기, 쥐불놀이, 더위 팔기 등 많은 이웃과 함께 즐기는 풍습과 놀 거리가 가득한 대보름날은 전통적인 농경사회였던 우리네 조상들에게는 설 못지않은 큰 명절이었다. 이런 전통이 퇴색되지 않도록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있다.
당진시 면천로 구룡동 경로회에서 지난 6일 마을 어르신들이 원조 복조리마을 전통을 잇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이날 마을회관에는 대한노인회 구자생 회장과 30여명의 경로회원들이 함께 했으며, 특별히 이곳 구룡동 출신 50년 경력 복조리 달인이자 대한명인 제13-371호 임건영(69세) 명인 이 함께 했다. 요즘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면서 대나무를 활용한 문화와 자연을 이용한 농기구 문화가 더 이상 발 디딜 틈이 없어지고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이날 우리 전통의 복조리 문화를 유지해가고 있는 당진시 면천로 구룡동 경로회를 찾아가 보았다.
복조리는 우리나라 세시 풍속으로 정월 초 하룻날 아침에 복조리를 쌍으로 묶어서 한쪽에는 찹쌀, 한쪽에는 멥쌀을 담고 덤으로 엿과  실을 얹어 우리가 자주 드나드는 방문위에 못을 박아서 걸었다. 복이 들어오라는 의미란다. 그리고 한 달을 지낸 후 이월 초하룻날 아침에 그것을 쏟아서 밥을 하고 엿 먹는 재미 또한 솔솔하다.
구룡동 경로회(회장 이정식) 30여 명은 점차 사라져가는 복조리 세시풍습을 살리고자 2009년부터 다시 재현을 시작했다.
기자가 경로당에 도착해보니 쪼개지 않은 시누대(산죽)와 잘 갖추려진 조리 살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박홍 전 노인회장은 “1950~60년대는 농사일이 끝나면 부업으로 조리를 만들기 시작 했다. 몇 집 빼고는 동네주민이 다 복조리를 만들어서 단합도 잘 되었고 마을이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플라스틱 조리가 나오고 돌을 고르는 정미기가 나오면서 복조리는 설 곳을 잃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정식 노인회장은 “매년 정월대보름 복조리를 만들며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는 자부심이 있다”며 “주민들 모두 화목하게 지내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임건영 명인은 “고향의 복조리는 어른들을 통해 다시 찾아 왔다. 감사하다. 복조리 원조 마을이 된 계기는 옛날에 외지에서 들어오신 할아버지가 갈 곳이 없어서 마을에 머물면서 복조리를 만듦으로 그 후로 동네에 퍼졌다고 들었다. 복조리를 벗어나 산죽으로 모든 액세서리를 만들어 기능보유자가 되었다”며 “중국산 조리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 안타깝지만 더욱 노력하여 앞으로 복조리 수공예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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