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미

  며칠 후면 직장에 손님들이 온답니다. 업무의 참신성과 효율성을 보러 오는 것이겠지요. 직장 대표는 탁월한 업무능력은 당연히 보여줘야 하는 것이고 더불어 말끔하게 정리된 실내외도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간혹 위선이라고 입 내미는 직원도 있습니다.

  그렇잖아도 흐린 유리창과 흙먼지 쌓인 창틀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단체에 깃들어 있으면서 나 혼자 쓸고 닦고 정리하는 북새통을 떨고 싶지 않았습니다. 왠지 다른 직원에게 부담 줄까 싶었던 것도 있지만 솔직히 귀찮은 점이 더 컸습니다. 

  분무기로 세제를 뿌린 후 신문지나 마른수건으로 닦아내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리창은 몇 년 동안 방치됐던 모양입니다. 아무리 닦아도 도대체 진도를 나갈 수 없습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마무리는 미약하게 생겼습니다. 청소 방법을 바꿨습니다. 물이 줄줄 흐르는 젖은 수건으로 유리창 때를 불린 후 닦았습니다. 세제를 뿌리는 것보다는 좀 나은 방법이었으나 유리창 한 장을 닦으려면 수돗가를 몇 차례 왕복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물그릇을 옆에 두고 싶은 마음 간절했습니다. 제 직장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좋은 방법을 찾아 고민하던 중 지혜가 섬광처럼 스쳤습니다. 이순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물휴지 2통이 있었습니다. 산처럼 쌓이는 물휴지를 보니 쓰레기가 또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약과입니다. 창틀 구석을 점유한 먼지가 더 문제였습니다. 물 한 방울만 떨어져도 민들레꽃이 피어나게 생겼습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다 두드리고 털었습니다. 어림도 없었습니다. 분무세재, 신문지, 마른수건, 젖은 수건, 쓰레받기, 빗자루, 물휴지를 다 던져 놓고 이번에는 송곳을 가져 왔습니다.

  창틀 깊숙한 구석까지 집어넣어 쌓인 먼지를 깨뜨리고 긁어냈습니다. 켜켜이 묵은 것들을 빼내니 마음마저 후련하였습니다. 큰 숨 한 번 쉬려는 찰라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미숫가루 같은 먼지가 입속은 물론 콧구멍을 지나 더 깊숙이 들어가 버렸습니다. 고생한다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었나 봅니다. 해 묵은 먼지는 얼굴도 잊지 않고 뽀얗게 분칠을 하였습니다. 다시 송곳을 던져 놓고 청소기를 빌려다 먼지를 빨아들였습니다.   

 의자를 끌고 다니며 위아래 8장을 다 닦자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선배직원이 외부 업무를 마치고 들어왔습니다. 그 분이 늦게 왔지만 괜찮습니다. 닦을 유리창은 아직도 8장이나 남아 있습니다. 오히려 함께 하면 좀 수월할까 싶어 반가웠습니다. 반 넘게 닦아놔서 그 분도 반가웠나 봅니다. 내 반대편에서 유리창을 경계로 서로 마주보며 닦기 시작하였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수다를 떨며 닦으니 하하, 호호 참 재미있습니다. 허나 오 센티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부딪치는 눈빛은 참으로 불편하였습니다. 서로 피하며 닦다보니 같은 유리창을 닦으면서도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어 닦고 있었습니다.

  손이 빠른 그 분은 벌써 두 번째 장으로 옮겼습니다. 잠시 후 뭘 그렇게 꾸물대냐며 호출합니다. 얼른 옮겨 가 두 번째 장을 닦고 있지만 마음은 첫 번째 장에서 옮겨오지 못했습니다. 그 분 쪽이 덜 닦였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찜찜한 마음을 접어두고 열심히 닦는 중에 그분의 목소리가 또 날아들었습니다. 페인트 묻은 자리를 가리키며 박박 좀 닦으라고 소리칩니다. 내가 볼 때는 그 분 쪽인데 내 페인트라고 소리칩니다. 곧바로 누구 쪽 페인트인지 답이 나왔습니다. 그 분은 민망한지 담배 태우러 훌쩍 가버렸습니다.

  불현듯 첫 번째  장에 눈길이 갔습니다. 덜 닦였다고 생각했던 그 분 쪽이 아닌 내가 닦던 곳이었습니다. 그 분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얼른 돌아가 다시 닦았더니 말끔해졌습니다. 그 분은 모르겠지만 내 양심은 쿵쾅거립니다. 

  담배를 몇 개비나 피우는지 그 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혼자 닦으니 목과 팔다리가 유난히 더 아팠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나머지 유리창은 먼지만 제거하는 정도로 대충 닦았습니다. 대표의 명령에 순응하는 정도로 청소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청소했는지 복숭아 뼈 주변에 멍이 시퍼렇게 드는 줄도 몰랐습니다.

  ‘남의 눈의 티끌을 보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분명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데 상대가 아니라고 우기면 화가 참 많이 납니다. 가끔 아이들 때문에 다투는 학부모님을 볼 때가 있습니다. 자기 아이의 말만 듣고 따져 묻다가 되잡혀 욕 볼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고 서운하거나 서러웠던 점만 간추려 엄마에게 전달해서 생긴 다툼입니다.

  어른들도 이런 다툼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상대와 다투고 화해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전혀 모르고 지나갑니다. 다투면 반드시 대화로 풀어야 내 잘못을 알고 명확하게 사과할 수 있습니다. 대화로 화해하면 사과로만 끝나지 않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학습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직장 대표는 말끔히 정리된 직장을 보여주고 싶었을 텐데 저는 유리창을 닦으며 제 자신도 닦았습니다. 내일은 우리 대표님과 선배직원에게 감사인사라도 드려야겠습니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