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철 송산종합사회복지관 관장

하루 밤이 지나면 신기록이 갱신이 된다. 언제까지 이러한 신기록이 갱신되는 열풍이 이어질 것인가? 매우 흥미롭기만 하다.  왜 이렇게 우리 사회는 “명랑” 이라는 영화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1597년에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공격에 맞서 승리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그린 영화로 개봉과 동시에 역대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68만 명), 역대 최고의 평일 스코어(98만 명), 역대 최고의 일일 스코어(125만 명), 최단 100만 명 돌파(2일), 최단 200만 명 돌파(3일), 최단 300만 명 돌파(4일), 최단 400만 명 돌파(5일), 최단 500만 명 돌파(6일), 최단 600만 명 돌파(7일), 최단 700만 명 돌파(8일), 최단 800만 명 돌파(10일), 최단 900만 명 돌파(11일), 최단 1000만 명 돌파(12일), 최단 1100만 명 돌파(13일) 등 연 일 신기록을 세우더니 개봉 18일 째인 16일 오후 11:30분에 누적 관객 수 1362만 7153명을 기록하면서 2009년에 개봉하여 3D 영화의 혁명을 일으킨 국내 영화 상영 흥행 1위 ‘아바타’의 1362만 명의 기록을 뛰어 넘었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 현상이 전염병같이 전체를 휩쓸게 되는 현상을 일컬어 신드롬(syndrome)이라 하는데, 현재 상영되는 영화 '명량'은 '우리 사회에서 신드롬(syndrome)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주에 오랜만에 어머님 계신 천안에서 아내와 두 자녀가 함께 오붓한 가족의 대화를 하는데 자연스럽게 “명량”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의 주제가 옮겨 갔다. 그런데 이 대화에서는 난 이방인이었다. 이런 저런 일로 우리 사회에 신드롬(syndrome)이 불어오는 “명량”을 관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족 모두는 “명량”을 관람을 했다는데, 아빠는 아직도 ‘명량’을 관람 못했느냐? 의 자녀들의 말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종합사회복지관의 특성 상 여름방학에 많은 프로그램들이 진행이 되어서 이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보니 어느덧 삼 복 더위가 물러가고 가을을 알리는 처서(處暑)가 지났는데도 계절의 바뀜을 실감하지 못한 채 사회복지 현장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가족과의 대화에서 소통이 되지 않은 내 자신을 바라보면서 시대에 뒤 떨어진 감각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가족과의 만남을 마치고 당진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속적으로 가슴에 남아 있었다.

현안의 산적한 업무에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매진해야 하는 내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엄습하기도 하였지만 영화를 봐야겠다고 굳게 다짐을 하고 막상 혼자서 영화를 관람할 용기는 더 더욱 나지 않아 결국엔 평소 존경하는 사회복지 선배님에게 전화를 걸어 “명량” 관람을 제안하여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충남 천안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1968년 서울 세종로에 세워진 이순신 동상을 보러 광화문에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이순신 장군을 성웅(聖雄)으로 추앙하여 충남 아산시에 세워진 현충사는 봄 소풍의 단골 코스였으며, 학도호국단의 국토순례 여행의 최종 목적지이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교과 과정에 포함된 이순신 장군의 ‘충(忠) ,‘효(孝)’, ‘의(義)’의 정신을 학습할 수 있었고, 아산 현충사의 충무교육원에 입소하여 훈련받았던 경험이 나의 정신적인 지주의 한 축이 되어 지금까지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명량'은 극장가를 휩쓰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정치, 문화, 스포츠, 산업 등 우리 사회 전체를 휩쓸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명량’ 패러디가 등장해 눈길을 끄는가 하면, 많은 매체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왜 대한민국이 ‘명량‘에 열광하는지 다각도의 분석을 하고 있다.

왜 '명량'의 이순신에 열광하는가?  필자는 우리 사회에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상처받은 민심들을 치유해야 할 모범적인 리더쉽(leadership) 에 대한 아쉬움과 갈망' 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4월16일에 공교롭게도 명량 해전의 율돌목에서 가까운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의 참사는 전 대한민국을 혼란과 절망에 빠뜨렸다. 이순신 장군의 반이라도 닮은 리더(leader)가 있었더라면 비극의 크기가 이렇게까지 크지는 않았을 것이란 뼈아픈 아쉬움이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내 뇌리를 지속적으로 스쳤다. 그 진한 아쉬움은 극한 상황에서 죽음을 무릅쓴 이순신 장군의 리더쉽(leadership)에 대비되면서 리더쉽(leadership) 부재의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에 대한 아쉬움의 대리 만족을 경험했다.

영화와 드라마 속 이순신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유현목 감독의 ‘성웅 이순신’(1962년) 등 3편의 이순신 영화가 나왔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엔 국난 극복의 상징이자 완전무결한 영웅이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임진왜란’에선 엄격하고 강한 군인으로 그려졌다.

반면 ‘명량’의 이순신은 강인한 리더쉽(leadership)을 지닌 영웅으로 부각되고 있다. 일각에선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의 강인한 리더십(leadership) 갈구에 대한 방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서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사건 사고들에게서 은 국민들의 피로감과 상실감은 국가의 총체적인 시스템(system) 붕괴로 이어지는 현실을 목도한다. "수군을 폐하고 권율 장군의 육전에 합류하라"는 임금의 밀지가 떨어졌을 때, 수군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조정에 강력히 건의하며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必生卽死 死必卽生)는 선조에 대한 이순신 장군의 간절한 간청 속에서, 수적인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여 대승을 이끌었던 이순신 장군의 리더쉽(leadership)이 그리운 것은 개인적인 욕심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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