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 바둑과 스타크래프트.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놀이.
nie - 바둑과 스타크래프트.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놀이.
  • 최효진 기자
  • 승인 2013.11.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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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과 스타크래프트.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놀이.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중독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이 세간의 이목을 받고 있다.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내용은 게임유저들에게 ‘게임중독법’이란 말로 회자되면서, 게임을 마약, 도박, 알코올 중독 등과 동일 선상에 놓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각 게임업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역시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여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고 한다. 신의진 의원의 홈페이지는 많은 접속량을 견디지 못하고 다운이 되기도 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자 신의진 의원 측은 “게임을 하는 것을 제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 중독되었다고 의학적 판단을 받은 사람을 관리하기 위한 법안이다”라고 한발짝 물러서는 형국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놀이에 빠져 자신이 꼭 해야 할 일들, 특히 생업에 관련한 것들에 대해 성실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속담으로 이해된다. 이런 속담들이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면 놀이 문화는 인류의 삶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내려왔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놀이중 하나는 ‘바둑’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지금은 바둑을 즐기는 인구보다는 컴퓨터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 등을 즐기는 인구가 훨씬 더 많아졌지만, 조훈현, 이창훈, 이세돌 등 바둑의 명인들은 아직도 사회적 인정을 받고 있고 외국 특히 동북아 3국에서는 그 명성이 드높다. 이런 것들을 보면 바둑은 아직도 자신의 위상을 지켜나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게임방송이 많아지면서, 게임천재들도 젊은 사람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예전의 놀이 문화와 최근의 놀이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바둑의 기원과 역사
바둑은 흑과 백이 겨루어 “집”을 지은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흑백이 서로 집을 지으려다 보면 경계선을 둘러 싼 분규가 일기 마련이며, 그것은 치열한 전투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돌들이 접촉하는 과정에서 돌의 삶과 죽음이 발생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수많은 격언과 교훈이 파생되었고, 그래서 바둑은 흔히 인생에 비유된다. 바둑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한국기원’ 측의 자료를 보면 바둑의 창시에는 여러 설들이 있다. 바둑의 유래는 대부분 고대의 전설에 의존하는 형편이며, 사실(史實)이 기록된 문헌도 드물다. 그러한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고대 중국의 요(堯)·순(舜) 임금이 어리석은 아들 단주(丹朱)와 상균(商均)을 깨우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다. 중국의 고전 《박물지(博物誌)》에 실린 '요조위기 단주선지(堯造圍棋 丹朱善之)'라는 문구에 따르면 기원전 2300년전 요왕이 아들을 위해 바둑을 발명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설문(說文)》에는 기원전 2200년경 순왕이 우매한 아들에게 바둑을 만들어 가르쳤다고 밝히고 있으며, 《중흥서(中興書)》에도 '요순이교우자야(堯舜以敎愚子也)'라는 글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내용 자체가 다분히 전설적인데다 구체적이지 못해서 이 '요순창시설'의 사실적 근거가 확실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 사실 '어리석은 아들'이라면 바둑을 배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모순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경(農耕)사회였던 고대에는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우주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도구로서 바둑이 발명되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고대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한 황하유역에는 해마다 홍수가 범람하여 선사시대 때부터 자연스럽게 천문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당시 하늘의 별자리를 표시하던 도구가 발전되어 오늘날의 바둑이 되었다는 설이 과학적인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대바둑의 틀과 수준을 진일보시켜 '영원한 기성(棋聖)'으로 불리는 중국 천상열차분야지도 출신의 우 칭위엔(吳淸源) 九단은 바둑의 유래에 관해 "요왕이 아들 단주에게 놀이도구로써가 아니라 천문을 연구하는 도구로써 바둑을 가르쳐주었을 것"이라며 앞서 두가지 설을 연결시킨 추론을 편 바 있다. 즉, 역학(易學)이나 제례(祭禮)에 관한 교양을 터득하라는 뜻에서 바둑을 가르쳤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도림(道林)이 백제의 개로왕과 바둑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백제문화가 일본에 전파될 때 바둑도 함께 건너간 것으로 추측된다. 일각에서는 기자조선(箕子朝鮮)시대 때부터 바둑이 두어졌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적 근거는 불확실하다.
국내 기보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1765년 영조 41년 민백흥(閔百興)이 쓴 <기론>이다. <기론> 은 서명날인과 기론, 상수도, 기보 등이 편철된 책으로, 이 필사본은 그동안 190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던 한국 기보의 최초 연도를 무려 150년이나 앞당긴 한국 최고(最古)의 기보다.
<기론>은 바둑을 초연수(焦延壽, 한말의 역학자), 사마광(司馬光, 1016∼1086) 등의 역사상(易思想)으로 파악하려한 것이 특징이다. 저자인 민백흥은 바둑을 일개 오락으로 보지 않고 주역의 한 방편으로 이해하려 했던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발명된 이래 한국과 일본에 전파되어 일부 상류층 사이에서만 행해지던 바둑이 본격적으로 근대적인 게임의 토대를 갖추게 된 것은 중세 일본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막부(幕府)시대에 바둑은 국기(國技)로 적극 지원을 받으면서 바야흐로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바둑을 업(業)으로 삼는 기사(棋士)제도와 본인방(本因坊)등의 바둑가문이 생기고, 이들에 의해 룰이 정비되며 각종 이론, 정석이 태어나는 등 비로소 근대경기로서의 틀과 체계가 세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가문세습제도 대신 협회(일본기원)와 프로제도가 탄생하고, 신문사들이 기전의 스폰서로 나서면서 오늘날 현대바둑의 틀을 갖추게 된다.
한편, 한국에서는 현재의 바둑과는 달리 돌들을 미리 배치하고 두는 고유의 순장(巡將)바둑이 20세기 초반까지 성행했는데, 현대바둑이 도입된 것은 해방후 일본에 바둑유학을 다녀온 조남철 九단의 의해서이다.
특히 현대바둑 보급에 일생을 바친 조남철 九단의 선구적 노력에 힘입어 당시까지만 해도 한량들의 잡기 취급을 받던 바둑이 오늘날 본격적인 정신스포츠로 자리 매김 되기에 이르렀다.

PC방을 활성화 시킨 스타크래프트
1998년 우리나라에 스타크래프트가 첫 선을 보인다. 당시 처음 생겼던 PC방은 스타크래프트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우후죽순으로 생긴다. 당시 대학가나 상업 중심지에 꼭 자리 잡고 있었던 당구장은 PC방 등장의 유탄을 받고 점점 사라지게 된다. PC방의 등장으로 많은 종류의 게임들, 예를 들면 오락실에서 즐겼던 ‘스트리트 파이터’ 등의 게임과 콘솔박스 형태로 즐겼던 게임들은 PC게임으로 정리되어 간다. 물론 아직도 콘솔박스 형태의 게임이 존재하고 있으나, PC의 발전에 따라 그래픽에 강점을 가진 콘솔은 뒤처지게 되었고, 스마트폰의 발전은 휴대용게임기 시장을 위축시키게 된다. 일본의 ‘닌텐도’는 이런 시대적 흐름에 뒤처지면서 어려움에 처해 있다.
99년 이후 PC게임의 발전은 주로 온라인을 통해 발전하게 된다. 김대중 정부 이후 광역통신망이 일반화되면서, 게임은 골방에서 혼자 즐기는 것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것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스타크래프트를 시작으로(물론 이전에도 온라인 게임은 존재했으나, 대중적이지는 못했다) 디아블로, 포트리스, 카트라이더, 리니지 등의 게임들이 게임유저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바둑과 마찬가지로 게임 역시 나름의 역사와 철학 세계관을 담고 있다.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게임도 존재하지만 나름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선택을 계속하게 되는 게임도 존재한다.
이제 게임은 문화이자 산업으로 발전했다. 온라인게임이 대세를 이루기 전에는 여러 패키지 게임들은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이 아닌, 불법 복제를 통해 즐기는 오락거리였다. 당시 게임은 개발하긴 하지만 돈이 되지 않는 산업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의 시대로 들어오면서, 게임은 유료화로의 전환에 성공하는 사례들을 남기게 되고, 심지어는 게임아이템을 사기 위한 현금거래까지 성행하게 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게임이 담고 있는 컨텐츠들은 강력하게 다른 산업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영화, 소설, 만화, 스포츠 등 여러 문화 매체와 상호교류를 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문화컨텐츠 중 가장 수위를 차지하는 것은 게임이다. 2012년 게임시장은 10조를 넘어서며, 출판계의 20조 시장에 절반을 육박한다. 국내 매출액은 방송과 광고 시장에 견줄 수 있지만, 수출액은 압도적으로 게임산업이 높다. 다른 한류컨텐츠가 국가적 지원 속에서 성장했지만 실제 수출액은 2조를 넘기고 있는 게임 산업의 수출액에 비하면 출판, 음악, 방송 등은 10분의 1수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게임 산업 규모는 전세계 시장의 10%를 넘기고 있는 4위권 국가이다. E-스포츠에서는 국가대표가 출전하여, 한국 게이머들의 위상을 드높였고, 각종 광고는 물론 여러 언론매체에서도 그들에 대한 기사를 다루고 있다.

지원과 규제 사이
얼마 전 온라인 만화 “기생”이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기원에서 프로기사를 준비하던 주인공이 입단에 실패한다. 이 주인공은 일반 무역업체에 들어가 조직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점들을 바둑에 비유하면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 준 작품이다. 이처럼 역사가 쌓인 바둑에는 그 깊이를 담아내는 나름의 철학이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한 때 도끼 자루를 썩게 만들었던 바둑이 인간사를 표현하는 그릇이 된 것이다.
게임 산업 역시 새로운 놀이이자 문화이다. 바둑이나 낚시 채널보다 게임채널이 더 많아졌다. 어린 학생들은 이창호, 이세돌 등의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프로바둑기사들은 잘 몰라도, 임요한, 이영호 등의 선수에 대해서는 열광하고 숭배한다. 바둑의 복기처럼 프로선수들의 플레이를 다시 보며 그들의 플레이에 감탄하고, 배우는 것이다.
게임에 몰입한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도 분명히 있다. 과도한 게임으로 인해 자살하거나 현금거래, 폭력 행사 등의 새로운 형태의 문제들도 발생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과도할 때 부작용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부작용들을 얼마나 최소화하고 게임개발자들의 창조력을 제한하지 않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느냐는 앞으로의 과제가 됐다. 이런 혼란의 시기가 정리되고 게임 역시 문화와 철학을 담아 낼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