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당진 구군청사 부지에 역사적 기록남길 상징물 건립 필요
[오피니언] 당진 구군청사 부지에 역사적 기록남길 상징물 건립 필요
  • 당진신문
  • 승인 2020.03.14 06:00
  • 호수 1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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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락 당진번영회 역대회장

[당진신문=임형락]

지난해 당진1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진행되면서 당진 구군청사 본관동 철거를 놓고 주민 간 의견이 분분한데 철거하더라도 당진현 관아자리였다는 역사적 표식을 남기는 상징물 건립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8년 당진1동이 도시재생 그린뉴딜 사업에 선정되어 당진시는 도시재생활성화 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지난해부터 2022년까지 총사업비 150억원을 들여 주민조직 커뮤니티 거점 조성, 시민문화 예술촌 조성, 도심광장 및 거점주차장 조성, 전기자동차 창업지원센터 건립, 청년주택 및 7080 특화거리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당진 구군청사 본관동을 철거한다는 계획이 세워졌고 철거가 추진되자 일부 지역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다.

문제가 되고 있는 구군청사를 철거할 것인지, 존치할 것인지는 건축물의 가치를 따져서 결정할 일이지만 구군청사 부지는 분명 역사적으로 가치가 큰 터전임을 생각할 때 개발도 좋지만 역사성을 살릴 수 있는 방안마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면천읍성을 복원하고 옛 면천군 관아를 복원 준비하는 것을 견주어 보면서 당진읍성 복원과 당진현 관아 복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만약 복원이 힘들다면 최소한 당진현 관아와 당진군청이 있었던 자리라는 역사적 사실을 확실하게 남길 수 있는 상징물이라도 건립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진은 백제시대 벌수지현이라는 지명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시대에 당진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조선 태종13년(1413년) 면천군 영하의 당진현에 처음으로 종6품의 현감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당진군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은 1914년 면천군과 당진현 등이 당진군으로 병합되면서 부터이다. 

당진 구군청 청사도 이 당시 다시 지어지고 여러 차례 개보수와 증축을 거쳐 군청사로 활용되어 오다가 지난 2011년 지금의 시청사로 이전하면서 청사역할이 끝났다. 그리고 그 뒤로는 지금까지 관내 여러 기관단체들이 공익 목적으로 다양하게 활용해왔다. 

지난 2014년 12월 당진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도시재생지원센터 개소, 도시재생대학 운영, 도시재생전략계획 수립 등을 진행오다 2018년 9월 당진1동이 도시재생뉴딜사업에 선정됐고 지난해 1월부터 활성화 계획 수립용역을 착수하고 지난해 8월부터 단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 추진에 따라 구군청 본관동을 철거하게 되었는데 어떤 건물을 철거할 때는 건물의 내구성에 대한 검토가 우선되어야 하고 역사적 보존가치와 건축사적 의미가 있는지, 문화적 보존의 가치와 시대를 환기시킬 수 있는 정체성이 있는 건물인지 따져보고 건물의 존치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당진 구군청사 건축물은 전통건축 양식도 아니고 근대건축 양식도 아니고 아주 특별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은 분명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구군청 주변에 흔적이 남아 있는 당진읍성은 고려말 공민왕 때 해안을 통해 8번의 외세 침략이 있었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세종 때인 1427년에 건립됐다는 역사기록이 남아 있으며 행정과 군사의 요충지였던 당진읍성은 당진천변 서벽과 북벽, 당진중앙1로, 당진농협 건물 뒤를 둘러싸 둘레가 약 900m나 되는 것으로 파악되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당진토성 흔적들과 역사 기록들을 중심으로 추론을 해보면 당진 구군청사 부지는 최소한 1413년부터 당진현 관아가 자리했었다는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터전임에 틀림이 없다.

아직도 당진읍성의 북문, 동문, 남산, 서문이라는 소지명이 그대로 남아 당진 구군청 청사를 중심으로 사방에 북문동, 동문동, 서문동, 남산이 자리하고 있고 근처에 비석의 받침돌인 거북이모양의 귀부가 남아있는 것을 볼 때 이곳이 당진현 관아의 위치가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근대사 기록들을 살펴보고 옛날 어른들의 구술전언을 들어볼 때 일제시대 도시의 형성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산실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으로서 당진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장소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후손들이 당진현과 당진군청의 역사를 보고 배우면서 우리고장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다고 생각되어 개발에 앞서 역사보존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진1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재논의해서라도 당진현 관아와 당진군청사가 자리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는 상징물 건립을 추가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