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당진신문=이해인] 나는 해외여행에 대한 갈증이 있다. 특히 프랑스 파리에 대한 로망이 있다. 파리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언제나 샹송을 듣는다. 우리 집 창밖을 내다보며 마치 에펠탑이 있는 것처럼 상상한다. 귀가 감미로운 샹송에 취할 때쯤 ‘현재 나는 파리 시내를 걷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파리 시내를 걷다가 눈에 띄는 가게에 들어가서 와인 한 잔을 주문한다. 초록빛 눈동자를 가진 직원이 곧바로 근사한 색을 가진 레드와인을 내온다. 나는 반대편 의자에 놓인 숄더백에서 가죽노트와 펜을 꺼내 지금의 행복한 감정을 적어본다. 나의 활짝 웃는 미소 때문에 얼굴 근육이 욱신거린다. 그 정도로 행복하다. 

몇 시간 뒤 나는 우아한 드레스와 어깨에 멋진 숄을 두르고 파리 시내 밤거리를 나섰다. 심플한 목걸이로 포인트를 줬더니 더없이 예뻤다. 오늘 볼 공연은 오페라다. '파리에서 듣는 오페라는 어떨까?' 센강 옆에 위치한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을 때 술 취한 남성이 다가왔다. 

"어디서 왔어요?" 나는 '코리아'라고 답했다. 어색하고 민망했다. 

남자는 한국을 아는 척 했고 우리는 얼떨결에 나란히 센강 주변을 걸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우리는 서로 말없이 눈빛만 주고받았다. 공연시간이 다가왔지만 지금 분위기가 너무도 낭만적이기 때문에 공연을 포기할지 잠깐 고민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남자는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러고는 내게 줄 것이 없다며 방금 전까지 자신이 마신 와인의 코르크마개를 내 손에 쥐어줬다. 아직까지 와인의 향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센 강의 찬바람이 내 볼에 스쳤다. 

우리 집 창문 밖으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느끼며 현실로 돌아왔다. 아주 잠시나마 파리 여행을 하고 온 밤. 나는 가끔씩 이렇게 상상으로 사치 부린다. 내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어서 이렇게 밤마다 파리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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