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14회 나루문학상 작품상-수필] 한여름 밤의 꿈
[2019 제14회 나루문학상 작품상-수필] 한여름 밤의 꿈
  • 당진신문
  • 승인 2019.10.16 11:54
  • 호수 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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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당진신문=이해인] 우리나라 사계절 중 특히 여름은 마법 같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계절이다. 물감을 떨어트린 것 같은 파란하늘, 건강한 힘을 주는 초록 나무들 덕분에 설렘이 가득하다.

나의 앨범 속 대부분은 여름이 배경이다. 지금의 남편에게 큐피드화살을 맞은 것도 여름이다. 여름은 나에게 크리스마스다. 늘 추억을 포장해서 안겨준다.

올 여름은 나에게 더욱 특별하다. 결혼 후 당진이라는 생소한 지역에서 맞는 첫 여름이기 때문이다. 당진에서 보낸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은 외로웠다.

나는 남편과도 잘 지내고 워낙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내 몸에 신장 하나가 없는 것처럼 늘 어딘가 허전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본 결과 답을 얻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공유할 사람이 필요했다.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글 쓰는 것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됐다. 글을 제대로 써본 적은 없지만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하지만 당진에서 찾기란 쉽지 않았다.

당진시민문예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문학작품 배우기’ 수업을 알게 됐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찾은 것인가. 당장 수업을 신청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수업 날만 기다렸다. 2019년 8월 6일 저녁 7시, 그렇게 기다렸던 수업이 시작됐다. 같이 수업을 듣게 된 분들도 첫 만남이 아닌 것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수업은 내 예상보다 더 재밌었다. 지금까지 외국서적에만 손이 갔던 내가 부끄러웠다. 한국수필은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지루한 문학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무지에서 온 착각이었다. 첫날 배운 피천득 수필은 우리글만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표현들로 가득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강의실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아름다운 한국수필을 읽는 것은 늘 내가 꿈꿔온 일이다. 앞으로 열심히 배우자는 다짐과 함께 괜히 주먹을 불끈 쥐어보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 가는 방향이 비슷한 수강생 선배께서 나와 오늘 처음만난 도반을 태워다주셨다. 이미 다 같이 카페를 들렀다 나오는 길이라 시간은 저녁 10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수강생 선배의 차가 어두운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앞자리에 앉은 젊은 도반이 자신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입을 열었다. 남 이야기 같지 않고 나도 그 나이 때 똑같이 느꼈던 감정이라 상당히 이입됐다. 나는 도반의 무거운 어깨를 토닥이며 내 생각을 꺼냈다. 한참 얘기가 오가는 중인데 어느새 우리 집 앞에 도착했다. 그 순간 선배님과 도반 그리고 나, 우리 셋은 한마음으로 뭉쳤다.

“내려서 더 얘기할까?”

감사하게도 선배님께서 먼저 우리 마음을 아시고 물어보셨고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좋아요’를 외쳤다.

주변 카페는 이미 문 닫은 시간. 어쩔 수없이 우리는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그날 밤 1시간 넘게 다양한 주제로 열띤 얘기를 나눴다. 웃기지만 슬프게도 모기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바람에 눈빛은 진지해도 각자의 손은 다리와 목을 벅벅 긁어댔다. 나로서는 평생 잊지 못할 한여름 밤의 꿈같은 하루였다.

그동안 당진에서 느꼈던 갈증을 사이다 마신 것처럼 싹 날려 보냈다. 그날 처음 만난 사람들이 맞는지, 진솔한 속마음을 꺼내며 위로받는 하루였다. 나에게 오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역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경험을 쌓는 것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말기로 다짐했다. 나룻배에 올라타 이사람 저사람 만나며 거친 물살도 이겨내고 멋진 풍광도 보면서 배가 흘러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나저나 우리의 피를 빨아먹던 모기들이 배탈이 나지 않았을까 걱정이다. 그날 우리 셋의 피는 그 누구보다 뜨거웠으니까. 나는 수필문학을 배워 가슴이 충만해지고, 모기도 뜨거운 피로 배가 충만해졌네. 오늘만큼은 나도 모기도 한여름 밤의 꿈같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