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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이 23대 후손 꿈에 나타나 자신의 묘 위치를 계시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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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산 송영환
등록일
2013-02-22 12:45:35
조회수
7227
허유전 묘소


족보에서 조차 찾지 못하던 700여년전의 고려때 조상이 23대 후손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묘의 위치에 대해 계시하는 등 가르쳐 줬다니...

조상의 음덕을 부정할수가 없네요...

여러분들은 여기에 대해 과연 어찌 생각하시나요?...

이래도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니..조상을 아무데나 묻거나...

또는 불태워도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몇년전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뉴스기사이니 인터넷에서 한번 검색해 보세요..





허유전[許有全, 고려 고종 30년(1243)∼충숙왕 10년(1323)]. 시호는 충목(忠穆),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지고 단성수절공신의 호를 받았다. 본관은 김해, 초명은 안(安). 충주사록 연(延)의 아들이다.

원종 말기에 문과에 급제, 전라도안렴사·감찰대부 권수동지밀직사사·도첨의참리·지밀직사사가 되었고 1321년 수첨의찬성사에 이어 정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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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동면 출신인 김해 허씨 허관구님이 1985년도에 23대조의 허유전 묘를 찾게된 꿈에 얽힌 실화이다.


허씨의 꿈에 홍천 연봉리에 살던 오연봉씨가 나타나서 자기 집 옆을 가리켰다고 한다.

오씨는 허씨가 어렸을 때 이웃에 살던 사람이었을 뿐,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10여 차례에 걸쳐 같은 꿈을 꾸니 괴이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얼마 뒤에는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허씨의 형수가 소복 차림으로 제사상을 들고 서너 발자국을 걸어와서는 오씨를 바라보는 내용이었다. 이 꿈도 10여 차례 꾸었다고 한다.


허씨는 이 꿈들이 조상이 무엇인가 알리는 계시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 뜻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문득 형수의 성이 안(安)씨인 것에 생각이 미쳐서 족보에서 이름이 <안>인 분을 찾게 되었고, 고려 시대 선조인 허유전(許有全)을 주목하게 되었다.

허유전은 초명이 <안(安)>이었다. 충선왕이 원나라에 잡혀가자 81세의 고령임에도 원나라까지 가서 석방운동을 하여, 당시 사람들은 그 충성심에 찬탄했다고 한다. 김해허씨 족보에는 산소가 강화도 佛谷인데 그 위치는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허씨는 형수가 입은 하얀 소복에서 흰색은 주역으로 서쪽을 뜻한다는 것과, 형수가 꿈에서 서너 발자국 걸은 것은 집에 있는 지도에서 강화도가 홍천에서 서쪽으로 일직선이며 3.5cm인 것을 연계시켰다.

허씨는 허유전 선조가 자신의 묘소를 계시한 것으로 알고 주말이면 강화도에 가서 무덤을 찾아 헤매었다. 하지만, 7∼8백년 전 고려 시대의 무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틈만나면 강화도로 가는 허씨를 가족들은 당연히 만류했다. 그러나 허씨의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1년여를 헤매던 어느 날, 허씨는 산 속에서 옛 무덤을 발견했다. 무덤 앞에는 반쯤 땅에 묻힌 비석이 있었는데, 비문에는 고려시대 장군인 오연봉이라는 글귀가 있었다.



허씨는 문득 홍천 연봉리 오씨가 꿈속에서 자기 집 옆을 가리키던 것을 떠올리고 선조의 무덤이 주위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벌써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다음 주일에 허씨는 문중 청년들과 함께 곡괭이와 삽을 가지고 오연봉 장군 무덤으로 갔다.


주위를 샅샅이 살피며 땅을 파헤치던 중 땅에 거의 다 묻힌 비석에서 흐릿하게 허(許)자가 새겨진 비석과 무덤 형태를 찾았다.

그 앞을 파내려 가자 허유전의 비석이 발견되었다. 피라미드 모양의 특이한 양식인 그 무덤은 학문이나 사료적으로 큰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강화군청에서는 군비를 들여 복원한 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하게 되었다. 660여년만에 조상이 자신의 묘를 이렇게 후손의 꿈에 까지 나타나 계시하고 안내해 준 이런 실화가 있는 데 어찌 조상의 음덕을 부정할 수 있으랴...






허유전 묘 : 인천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 인천기념물 제26호.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이 내용은 1997년도에 서울 모 방송사에서 실화를 소재로 제작 방송했다.


허관구님이 그런 꿈을 꾸었다는 것도 신비롭지만 그 꿈을 여러모로 풀이한 뒤 신념을 갖고 1년여 동안 먼길을 찾아가서 산소를 찾은 신념과 정성이 참으로 대단하다.



허씨에 의해 국가적으로는 귀한 문화재가 발굴되었고, 허씨 문중으로는 상대선조(上代先祖)의 묘소를 찾은 것이다. 직장을 퇴직한 허씨는 강화도에서 허유전의 무덤을 관리하였다고 한다.
작성일:2013-02-22 12:45:35 118.34.7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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