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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이씨 충정공(휘 시방) 후손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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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이씨충정공종중
등록일
2019-04-30 16:41:23
조회수
401
연안이씨 충정공(휘 시방) 후손을 찾습니다.

당진에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시는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에는 연락이 거의 끊어
졌습니다. 혹시 이글을 보시는 후손이 계시면 아래 종중으로 연락 부탁 드립니다.

연안이씨 충정공파종중 연락처 010-5431-0376

충정공 이시방

본관 연안. 자 계명(季明). 시호 충정(忠靖). 호 서봉(西峯). 귀(貴)의 아들이며 영의정 시백(時白)의 동생이다. 인조반정을 주도한 아버지를 따라 유생으로 거사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녹훈되고 연성군(延城君)에 봉해졌다. 서산군수 ·공조참판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군사와 군량을 모으는 데 공을 세웠다.

광주목사 ·나주목사 ·전라도관찰사 등에 임명되어 지방 행정을 수행하거나 남한산성방어사 등을 맡아 국방체계의 정비에 깊이 관여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구원하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정산(定山)에 유배되었다가 1640년 풀려났다. 그 후 심기원(沈器遠)의 옥사 때 연관되었다는 비판도 받았으나 공조와 형조의 판서로 승진하여 갔으며, 1649년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효종 즉위 후 재차 판서를 역임하다가 청나라에 빌붙어 나라를 배신한 김자점(金自點)과 가까웠다는 이유로 파직되었으나 현종 재위 시에 다시 공조판서를 지냈다. 반정공신 세력의 중심에 속하여 정치적 격동 속에 여러 번 위기를 맞았으나 일에 신중히 대처하고 군사 ·민생 등의 실무에 열중하면서 일반 사족들과 무리없는 관계를 유지하였다. 호조참판이나 공조판서로 있을 때는 대동법 시행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문집으로 《서봉일기》가 있다.
작성일:2019-04-30 16:41:23 210.95.187.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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