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꽃밭 기획연재-6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를 읽고
글/조던 스콧, 그림/시드니 스미스

ⓒ삽화 김여은
ⓒ삽화 김여은

[그림책꽃밭 윤영순] 이 그림책은 캐나다 작가 조던 스콧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 아이는 말을 더듬는다. 아이의 아침은 언제나 힘들고, 학교에서 발표가 있는 날에는 아예 입이 꼼짝도 않는다. 집에 가고만 싶다.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온 아빠는 발표를 잘 못 한 아이에게 조용한 데 들렀다 가자고 이야기한다. 아빠가 데려간 곳은 강가. 강물을 가리키며 아빠는 아이에게 말한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다” 

아이는 울고 싶을 때, 말하기 싫을 때, 아빠와 함께 본 그 당당한 강물을 생각한다. 물거품을 일으키고 굽이치고, 소용돌이치고, 부딪치며 흘러가는 강물을 떠올린다. 그 빠른 물살 너머의 잔잔한 강물도 떠올린다. 아이가 그런 것처럼 강물도 더듬거릴 때가 있다.

이 그림책을 보면 수업시간에 책을 읽겠다고 손을 든 초등학생 때의 내가 생각난다. 나는 발표만 시키면 가느다란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얼굴이 빨개졌다. 그래서 자꾸만 손을 들고 발표했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다른 아이들처럼 떨지 않고 발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착각이었다. 나이가 들어 직장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적 보고를 할 때도 내 목소리는 떨렸다. 왜 나는 사람들 앞에서 유창하게 말하지 못할까.

그런 내가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서, 나는 나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당진시 자원봉사센터에서 하는 아동극 봉사활동을 지원했다. 그곳에서의 첫 번째 목표는 떨지 않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고, 두 번째 목표는 아이에게 무대에 선 엄마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타고난 성격을 깨고 후련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었던 작은 용기가, 아이에게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큰 용기를 만나서 벌인 일이었다. 물론 아동극 교육 첫날. 자기소개를 어떻게 했는지, 무엇을 들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3개월 동안 아동극 연기 수업을 받고 첫 공연이 잡혔다. 최대한 짧은 대사를 하는 등장인물이 되고 싶었는데 공연을 시작하는 해설을 맡게 되었다. “내가 첫 순서라니?” 나의 발성이나 호흡보다 중요한 건 자신감이었다. 내 안에 잔뜩 움츠리고 있는 또 다른 나를 어떻게든 요절내야만 했다. 나는 단원들 앞에 서 있고 강사는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쳐다보고 있다. 가슴이 ‘쿵쾅’거리지 않도록 나는 심호흡을 하며 연기 수업 중에 강사님이 해주신 말을 되새겼다. 

“내가 떨린다고 생각하는 것, 그건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드디어 나는, 유치원 아이들 앞에 까치 인형 머리띠를 두르고 해설가로 섰다. 결과는? 유료 공연 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행복했다! 

공연을 마치고 난 뒤, 나눈 소감발표 시간에 나는 놀랐다. 전혀 떨지 않고 무대를 즐기시던 분이 본인은 대중 앞에서 말을 잘 못 해 지원했다고 한다.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나도 무대 울렁증 때문에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가 같은 반응을 받았다. 이 세상에 나만 떨고 있는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도 떨고 있었다. 

나도 강물처럼 말한다. 유창하게 말하는 건 내가 아니니까. 나는 점점 더 나아간다 강물처럼. 그 강물은 흘러 흘러 새로운 곳으로 흐르고 부딪힐 테지만, 그 순간이 두렵지 않은 건 내가 지나온 강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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