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파누코(Sal Panuco)

살 파누코(Sal Panuco).
살 파누코(Sal Panuco).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1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서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꿈만 같았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알려진 한국으로 거의 10여년 만에 다시 오게 되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나는 ‘빨리 빨리의 땅’에 도착해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인천공항 내에 다양한 언어로 흘러나오는 항공편 번호와 탑승구 번호를 안내하는 소리가 다소 흐릿하고 뭉개지는 듯 가물거리게 들리며 입국장을 빠져 나왔다. 마침내 한국에 왔다는 사실을 막연히 느끼며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서 이제 인천국제공항에서 충남 최북서단에 위치한 당진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저녁 6시에 한국에 도착해 가방을 찾고, 입국심사를 하는 등 한국에서의 첫 번째 관문을 거치고 공항 밖으로 나와 보니 정작 당진으로 가는 마지막 공항버스를 놓치고야 말았다. 그래도 당진으로 간다는 기대감으로 내 마음을 온통 설레게 만들었는지 몸은 피곤했지만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해왔지만 한국을 떠난 지 10여년이 훌쩍 지나 한국어 실력이 많이 부족했지만, 나의 한국어를 테스트를 해볼 겸 공항 곳곳의 안내소를 찾아 한국어로 당진으로 가는 방법을 물어가며 돌아다녔다. 

나는 몇 번이나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안내소에서 근무하는 한국인들이 오히려 나에게 영어로 말을 하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하곤 했다. 길을 잃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을 돕는 것이 안내소 직원들의 직업이라지만, 나는 ‘내가 외국인이라 너무 잘해 주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결국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포기하고 영어로 대화를 하며 직원들을 따라 이리저리 다녀야만 했다. 

이 때 든 생각은 “아~~! 나의 한국어 실력은 태권도 검은 띠는 커녕 흰 띠도 안 되는구나!”였다. 그날 결국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인천공항에서 평택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내가 일할 당진의 학원 원장님과의 통화 결과 원장님이 평택버스터미널로 나를 픽업 하러 직접 오기로 한 것이다.

평택까지 마중 나온 원장님께 너무 미안하고 나와 주신 것에 대해 크게 감동을 받았다. 미국에서 인천 그리고 평택을 거쳐 당진까지 약 15시간의 그 힘들었지만 특별한 밤을 나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10년 전 처음 대전에서 살다가 LA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한국을 찾아 생활하기 위해 온 것에 대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전에 내가 살았던 지역은 대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당진은 나에겐 두 번째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친구와 가족들은 왜 라라랜드(로스앤젤레스의 별명)를 떠나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한국으로 가는지 궁금해 했다. 그때마다 나는 “라라랜드는 나에게는 육신의 고향이지만, 한국은 영적인 고향”이라고 설명했다. 영혼의 차원에서 가장 좋은 집처럼 느껴지는 마음의 고향. 이곳 당진은 한국에서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을 주는 곳이다. 10년 동안 거주하며 주민들과 함께 일하고 살아온 대전과 충남은 나의 마음속에는 아주 특별한 곳이었다. 

나는 한국말 중에서 ‘정(情)’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대전, 충남, 당진은 나의 삶과 기억을 가지고 마음속에 들어있는 정(情)과 같다.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멕시코계 미국인 살 파누코(Sal Panuco)다. 

나는 에너지 넘치는 당진의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곳에 처음 와서 당진신문에 칼럼을 쓸 수 있는 기쁨과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당진 사람들에게 내 자신을 소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칼럼을 통해 당진에 사는 외국인의 삶과 외국인이 느끼는 당진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외국인이 느끼는 시간과 경험들을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다.  


※살 파누코 씨의 기고문은 매달 1회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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