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순 당진수필문학회

강복순 당진수필문학회
강복순 당진수필문학회

합덕이라는 작은 시골이 있다. 시끌벅적 하지 않고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고장이다. 농사가 최고의 소득원이었을 때에는 썩은 생선도 다 팔릴 정도로 왕성하고 활기찬 지역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미용실은 상권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 벗어난 한적한 동네에 자리 잡고 있다. 빌딩도 없고 건물도 많지 않은 동네는 새소리 지저귀고 흙내와 풀꽃향이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곳이다. 콩나물시루 같은 전철을 타고 출근한다는 뉴스와는 먼 지역 이야기고 거울 앞에 앉아 윤기 없는 얼굴에 화장품을 이용하여 생기를 불어주면 그것이 바로 출근이다.  

차 한 잔 타 놓고 여유를 즐기다 보면 찾아오는 손님들의 행동이나 머리 유형으로 나도 모르게 점쟁이 아닌 점쟁이가 된다. 고상하게 생긴 영숙 엄마 첫 손님으로 등장 한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자리에 앉더니 그동안 지냈던 묶은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기 시작한다.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동네 뉴스를 알리기 시작한다. 누구누구는 교통사고 나서 입원했고, 옆 동 아줌마는 갑작스런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 같더니 의식불명이고, 간난엄마는 시집간 딸아이 봐주러 갈 예정이라는 등 지방신문도 아닌데 자동방송을 YTN 급으로 말한다.

연신 쏟아 내는 뉴스를 듣다 보면 파마도 자동으로 말리듯 끝이 난다. 영숙 엄마 입담 속에 묻혀 조용히 들어와 대기하던 다음 분 자리에 앉는다. 거울 앞의 주인공이 바뀌며 자연스럽게 주제도 바뀐다. 거울 속 주인공인 금숙 엄마 주제는 갱년기란 놈이다. 

거울을 보며 한을 토하듯 누구하나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뼈마디가 아프고, 홍조가 심해서 어렵다는 등 인생의 살 낙이 없다며 자기 집 강아지 보다 못한 처지라고 신세타령이다. 한 때는 알아주는 미모와 능력으로 자신감이 넘치고 활발하여 인기가 많았다 한다. 결혼하여 가족에게 헌신하다 보니 청춘은 지나고 애들은 자기 둥지를 떠나고 없다며 사춘기보다 더 무섭다는 오춘기라는 놈을 앓고 있는 듯 넋두리를 한다.  

파마가 끝났음에도 귀가하지 않은 영숙 엄마는 자기 일인 듯 그려 “맞아 맞아” 하며 어느새 같이 동참하고 있다. 늙어가는 마음이 통했는지 그들은 오래전부터 아주 친한 사람들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열심히 주고받는다. 

서로가 된장은 어찌 담아야 맛있고, 공기 순환이 잘되고 된장독을 자주 닦아줘야 된다는 등, 이른 봄철에 냉이와 쑥이 먹기 좋게 새싹이 돋아 무쳐 먹으면 입맛을 돋운다며, 화제를 바꿔 농사 준비하는 얘기며 집안의 소소한 일까지 술술 풀어 놓는다. 

두 시간 남짓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다 보면 영숙 엄마와 금숙 엄마는 퇴장하고 외국인 손님이 다음 손님으로 등장한다. 몇 해 전에 한국으로 돈 벌러 왔다는 외국인 손님의 질문이 웃음을 불러온다. “사장님 왜 여기 아줌마들 머리는 다 비슷해요?” 한다.

“한국은 예전에 어렵게 살아서 머리 손질 비용도 아낄 마음에 짧고 꼬불거리게 파마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고 내 생각을 말해 줬다. 사실 그랬다 머리를 잘라서 가발 만드는데 팔아 쓰기도 하고 파마할 형편이 안돼서 질끈 묶고 다니는 것도 다반사였다. 어쩌다 집안 행사가 있으면 고대*를 하면 일주일도 머리 감지 않고 그대로 다녔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상상도 못하는 일일 것이다. 

잠시 상념에 빠져있을 새도 없이 또 다른 분이 들어와 스마트폰의 사진을 보이며 이렇게 해달라고 말한다. 나도 손님 나라의 말을 할 줄 몰라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자세로 요구한 대로 머리형을 맞춰서 완성작을 만든다. 

만족하여 거울 속에서 퇴장하면 다음 손님은 가게 문을 박차고 요란하게 들어오며 다짜고짜 “원장님 흰머리 안나는 약 좀 개발 하세요” 한다. 머리숱도 없고 새치까지 자라서 신경이 쓰인단다. 그의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내가 에디슨, 장영실도 아닌데 어찌 그리 어려운 숙제를 하라는지 난감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면 손님들은 뒤엉켜 낮설음은 없고 오래전부터 자별한 사인 듯 수다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 그 순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윗집 언니는 고구마 한 바구니 쪄서 들고 온다. 아줌마들의 넋두리는 어디가고 고구마가 별미라는 듯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마구마구 입으로 넣는다. 그동안 쌓여 있던 묵은 스트레스를 벗어 버리고 가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그들만의 방식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있다. 

언제 왔는지 약방의 감초격인 동네 마실 꾼 입장하여 너스레 떨며 한바탕 입담을 늘어놓는다. 요즘 트로트 방송이 대세인 걸 입증이나 하듯 그동안 혼자서 떠들던 tv를 보고는 경연 자 들의 노래를 구성지게 따라 부른다.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하면 마치 자신이 평론가나 사회자라도 되는 듯 자기 평론을 보태며 따라 부르기를 권한다. 노래 한 대목 한 대목 표정을 넣으며 어찌 그리 맛깔스럽게 부르던지 노래 강사가 가르치듯 몰입하여 떼창을 한다. 

모두를 웃음바다로 만들어 놓고 자기 소일을 다했는지 소리 없이 퇴장해 버린다. 세상 고민 다하고 있던 그들도 신나게 웃고 떠드는 동안 고민이 사라졌다는 표정으로 퇴장하고 어느새 반나절이 지나가면 미용실도 일 막이 끝난다. 

다시 후반전 시작이다. 약간 소원해진 틈을 타서 쥔장도 상념 없이 있을 때쯤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온다. 이번에는 손님 관상을 보니 예민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얼굴 표정에 ‘나 오늘 불쾌하니 건들지 마시오.‘ 라고 쓰여 있다. 오랜 경험으로 오는 직관이라고 할 것이다. 

머리숱도 없고 모발도 가는데 그것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예민한 부분일 것이다. 볼륨을 강조하며 머리를 풍성하게 해달라고 피자 주문하듯 세심하게 요구한다. 주문을 받고는 열심히 마법을 부리듯 그동안 가지고 있던 노하우를 맘껏 발휘해 해결해 준다. 예민했던 얼굴은 사라지고 구세주 만난 듯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는 또 찾아오겠다는 인사를 하고는 발걸음 가볍게 퇴장을 한다. 이런 저런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다녀가면 나의 하루도 쏜살같이 지나간다.

찾아오는 분들을 보면 그들의 행동이나 머리 유형으로 나도 모르게 점쟁이 아닌 점쟁이가    된다. 모발이 억세고 짧은 머리형은 성격도 강직하고 남성성이 강하고 가는 머리에 숱이 없고 거친 유형들은 지병이 있거나 성격이 예민하며, 단발머리를 고집하는 유형들은 자기 생각과 주관이 뚜렷하고 강한 의지력이 많은 편이다.

오랜 세월에 얻어낸 경험이라고 할 것이다. 그로 인해 사람에 대한 응대도 자연스럽고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요령이 생겼다. 거울을 맞대어 첫 대면을 하면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 무슨 일 하는지, 또는 자영업을 하는지, 과수원이나 행정업무를 하는지‘ 질문한다. 그러면 철학을 하는지 질문하는 손님도 있다. 

긴 세월 반복된 일을 하다 보니 머리 모습과 행동에서 터득한 생활형 학습이라 할 것이다. 야생동물이 먹이 감을 찾을 때 실패하지 않으려고 시각, 촉각도 모자라 육감으로 사냥하듯 내가 사는 야생에서 살아남으려 터득한 것이다. 

하루의 막을 내리면 남는 것은 그들을 예쁘게 해줬다는 만족감도 있지만 육체의 탈진과 정신의 허탈감을 보상이라도 하듯 식탐과 수다로 하루를 털어 낸다. 한때는 일이 지치고 힘들어 달아나려고 발버둥 쳤던 때도 있다. 주구장창 백반만 먹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양식을 먹으면 탈나듯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사람들과의 만남에 즐기다보니 그 안에 삶의 희로애락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장장이가 무수히 망치질해가며 자기의 작품을 완성하고 희열을 느끼듯 때로는 수준낮은 말로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도 있고, 도가  넘치는 주문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찌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 수 있겠는가. 나도 부족한 것이 많은데 같이 어우러져 부딪치고 이겨내면 지구처럼 둥근 날이 올 것이다. 내일 또 아침은 올 것이고 나는 또 변함없이 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힘든 것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최고의 멋진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당진 #당진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