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홍순화

홍순화 시인.
홍순화 시인.

언제부터인가 실밥처리 공정을 무시한 골목

원샷으로 커피를 먹은 미싱들이
부산스럽게 아침을 열고 있지만
양손에 생을 맡긴 제품집엔 출근시간만 존재한다
마감에 쫓길 때마다 퇴근을 반납한 휴식은
미싱판 위에서 쪽잠으로 처리되고
비몽사몽을 헤매면서도 불량을 허락하지 않던 
손가락에도 눈은 달려 있었다

디스크와 관절염을 달래려고
게보린 량을 늘려도 옥죄어오는 고통은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막는 또 다른 카드의 연체기일
졸음보다 앞서 노루발은 달려나가고
계절을 거꾸로 살아보아도
허기진 삶은 말끔하게 오버로크되지 못하는 인생

지문 닳은 손가락들이 사는 하청골목
그래도 배경뿐인 삶을 살아내는 건
또랑또랑한 눈동자에
내일이라는 희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원청을 희망하는 하청들이 밤을 잊은 오늘도
마감을 지키기 위한 손들은 부지런히
틈새 벌어진 몸에 지퍼를 채우고 있다


충남 천안 출생. 2017년 《불교문예》 신인상 등단. 현재 불교문예와 꿈과 두레박 및 당진시인협회원 작품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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