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연구가 김동관 저서 ‘장승탐구’로 주장 “석장승으로 명칭 변경돼야”

신평면 운정리에 위치한 당진시 향토유적 제8호 돌미륵의 모습. ⓒ고정호
신평면 운정리에 위치한 당진시 향토유적 제8호 돌미륵의 모습. ⓒ고정호

[당진신문=고정호 기자]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돌미륵의 국가문화재 승격 필요성이 제기됐다. 

민속연구가 김동관씨는 본인의 저서 ‘장승탐구’를 통해 “운정리 석장승(신평 돌미륵)은 명문(돌, 금속 등에 새긴 글) 기록이 명확한 최고(最古)의 석장승으로 국가문화재로 상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7년 6월 20일 당진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된 신평 돌미륵(신평면 운정리 568)은 조선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 신앙의 유적이자 마을 수호와 안녕을 기원해 세워진 돌미륵은, 한 개의 돌로 머리와 몸이 만들어진 남근석(男根石)의 형태로 높이 217cm, 두께 70cm 내외이며 얼굴 높이는 92cm다. 

또한, 돌미륵 옆에는 별도의 돌기둥이 있는데, 여기에 음각된 한자로 ‘선덕 3년 무신’이 적혀있다. 이는 곧 세종 10년인 1428년을 뜻하며, 이를 통해 돌미륵이 세워진 시기를 1428년으로 동일하게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운정리 돌미륵은 삼도와 웃주름살 등을 표현한 미륵불의 모습을 갖춘 불교의 미륵신앙 형태로 해석돼왔다. 그러나 김동관 씨는 운정리 돌미륵에서는 미륵 석불 흔적은 없으며, 석장승으로 명칭을 변경해야 하며, 이에 따라 기존 조선 후기에 출현했다는 석장승 학설도 개편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관씨는 “현재 미륵 석불로 볼 수 있는 흔적이 전혀 없으며, 조각선이나 팔과 손의 모습, 손의 수인도 없다. 또한, 입석에 있는 명문 기록 자체로 볼 때, 석장승은 미륵불이 아니라 벽사와 수호의 의미로 만든 석장승임이 분명하다”며 “1997년 사진과 이후 사진들을 살펴보면, 크고 많은 독특한 무늬와 여러 가닥의 긴 혀를 지녔다. 따라서 운정리 석장승의 외부적인 모습으로 보면, 실상사 석장승이나 쌍계사지 석장승 등 석장승들과의 공통적인 특징을 지닌,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고유한 석장승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내 유일한 실물과 기록에 근거하여, 제일 오래된 석장승으로 국가문화재 승격도 이뤄져야 한다고 김동관씨는 밝혔다.

김동관씨는 “운정리 석장승과 그 옆의 입석을 분석한 결과, 동일 시기에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며 “선덕 3년에 만들었다는 명확한 명문 기록이 있기에, 조선시대 후기에 와서야 석장승이 출현했다는 기존 학설은 수정되어야 한다. 고려시대 사람의 얼굴을 닮은 인면형 석장승이 존재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실물이 없기에 운정리 석장승이 국내에서 명문상 기록이 명확한 제일 오래된 석장승으로 국가문화재 상향 및 적극 보존활동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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