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동 칭다오 대학 석좌교수

한형동 칭다오 대학 석좌교수. ⓒ당진신문
한형동 칭다오 대학 석좌교수. ⓒ당진신문

미국 작가 다이앤 프롤로브는 “귀 기울여보라. 들리는가? 봄의 달콤한 칸타타가, 눈을 뚫고 나오는 봄의 선율이, 꽃봉오리의 노래가”라고 환희와 생동의 봄이 오는 소리를 묘사했다.

이당 안병욱 선생은 ‘봄의 예찬’에서 “봄처녀가 생명의 젖가슴을 갖고 부드러운 희열의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의 문을 두드린다” 고 봄의 생명성과 기쁨을 찬미했다. 그렇다. 봄은 말만 들어도 우리 마음을 생명수 흐르는 아름다운 초원으로 초대한다. 인간은 잃어버린 청춘을 한탄과 함께 체념하다가도 다시 찾아오는 봄에는 희망과 젊음을 느끼며 심적 위안을 받는다.

자연이 내려준 혜택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봄이 아닌가 한다. 봄은 대지를 새로운 옷들로 갈아 입힌다. 천자만홍(千紫萬紅)의 꽃들로 곱게 물든 산하(山河), 바람에 흔들리는 파릇한 새 나뭇잎의 청신함, 게다가 물결에 아롱대는 햇살, 노래하는 꾀고리의 청아한 목청, 모두가 아프리만큼 아름다운 봄의 정경들이 아닌가. 과연 프랑스 사실주의 문호 플로베르가 “봄이 오니 다시 죽고싶어지지도 않는다”고 독백한 것이 실감난다. 확실히 봄은 사람을 유혹하는 마력을 가진 계절이다. 

요즈음은 마침 미려한 꽃들의 향기로 출렁이는 사월의 향연이 현요(眩耀)하게 펼쳐지고 있다. 좀 지나면 계절의 여왕 5월의 하늘이 신록의 경이속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이 또한 우리가 놓칠 수 없는 인생 소풍의 좋은 기회다. 

꽃은 우리에게 황홀과 도취,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는 신의 고귀한 선물이다. 온갖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도 절대권력의 진시황도 꽃 한송이처럼 생생하고 화려하게 치장할 수는 없다. 이에 우리는 백화난만(百花爛漫)한 이 대자연의 축제속에 화초와 하늘과 바람과 함께 숨쉬며, 노래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봄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릴 수 없기에 단명의 생을 보낸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 애석함을 남기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옛 시인들은 가는 봄 지는 꽃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한 시를 많이 남겼다. 

당나라 시성 두보는 “꽃잎 하나 날려도 봄은 가는데, 바람에 수만 꽃잎 흩날리니 진정 근심스럽도다”라고 낙화와 더불어 가는 봄의 슬픔을 읊었다. 그는 유수와 같은 인생의 찰나성을 알기에 낙화가 그리도 안타까웠을 게다. 또 백거이는 “지는 모란꽃이 애처러워 밤새워 등불 밝혀 바라본다”고 했다.여기의 애처로움에도 인생의 무상함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속절없이 가는 봄과 인생의 속성을 알기에 상춘객들은 봄의 장단(長短)과 꽃의 색갈을 다투지 않는다. 그저 향기 품고 다시 피는 꽃이 곱고, 가벼운 율동으로 춤추는 나비가 반가울 뿐이다. 이 모두가 신기루 같이 금방 지나가는 봄 벗들의 한 바탕 재롱인 것을 알면서도. 다만 사람들은 꽃과 나비들의 재롱잔치가 끝나면 머무는 듯 가버리는 세월을 야속해 할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가는 봄의 뒷그림자를 보면서 허전함을 느낀다. 아침에 찬란했던 태양은 하루의 기억을 만들며 황혼에 작별을 고하고 서산마루를 넘는다. 봄도 작렬하는 태양의 여름을 위해 뻐구기 소리와 함께 석별의 노래를 부른다. 인생의 젊음 또한 이렇게 하루 하루의 무덤을 만들며 박정한 봄처럼 지나간다. 

그러니 이 짧은 봄과 같은 유한한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행복하고 보람있게 보낼 것인가?. 스위스 성자 힐티는 ‘행복론’ 에서 “참된 행복은 신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너무 종교적이다. 그런가 하면 ‘할 일과 사랑할 사람과 희망이 있을 때 행복하다’는 칸트의 말은 너무 소박하다. 

이들 보다는 차라리 “행복은 나비와 같아서 잡으려면 달아나고 가만이 있으면 살포시 어깨위에 않는다”고 한 어느 시인의 말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나는 많은 선각자들의 행복론은 차치하고,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정리하고 싶다. 

인생은 리허설이 허용되지 않는 단막극이다 이 극을 해피앤딩으로 장식하기 위해, 우리는 촌각(寸刻)을 아껴 부단히 배우고 일하며, 타인에 베풀고, 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롱펠로우는 ‘인생찬가’에서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라,인생은 한갓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인생은 진실이며, 진지하다”라고 했다. 우리 모두 새봄을 한껏 즐기되, 진지한 인생의 의미도 깊히 음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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