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 필진 ‘TALK’ > 안 병 돈 > 수필가, 교육학박사 신성대 교수(前)

푸르른 하늘 아래 아름답게 펼쳐진 우리강산, 어디를 가나 수려하지 않은 곳이 없으며 어느 것 하나 귀중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일찍이 이런 아름다운 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우리 조상들은 이 땅을 금수강산이라 찬미하면서 자연과의 조화 속에 향기높은 민족문화를 꽃피워 왔다.

단군신화의 전설 속에 반만년을 지켜오며 삼면이 바다요 대륙에 붙은 사계절의 반도로 그 풍토에 적응하며 배달민족이요 단일민족임을 자랑해 왔다.

하늘과 땅의 푸르름이 여기로부터, 우리로부터 온누리에 다 할 것 같은 패기로 정체성을 뿌리내리며 든든한 줄기에 열매가 풍성했으니 정이 넘치는 성정으로 굳어져왔다고 본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세계는 국가주의에서, 인터내셔널시대로, 다시 지구촌시대로 다시 로컬지구촌시대로 변모했다.

즉, 국수주의요 민족주의만을 고집해서는 고립된 생활이 되고 있음을 본다. 따라서 다문화시대가 되었고 전 세계 65억 인구가 이웃이 되는 시대로 우리도 다인종 가정으로 모든 인종이 함께 가정도 이루고 삶의 현장이 어우러져 동거 동락하는 시대가 된 지 오래이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120만명의 다민족의 문화가 융합되는 현실에서 내 것만을 고집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내 정체성을 잃어 용해되는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미풍양속, 우리의 조상이 물려준 좋은 생각이요, 말이요, 행동을 토착화시키며 민족문화를 이어 번성해야 함을 말하고 싶다.

이런 차원에서 오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시간 속에 그때그때의 시대별 작품을 통해 우리의 성정을 생각하고자 한다.

민요요, 문학작품들은 그 시대 사람들의 성정, 즉 생각과 습관등을 잘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그 몇 가지를 정리해 보려한다.

먼저 우리 민족 최초의 작품으로 부족국가 시대의 고대가요로 구지가, 황조가, 공무도하가인데 이때에는 순수와 정을 말해준다.

그 중에 고구려 2대 왕인 유리왕의 황조가를 보면

“펄펄나는 저 꾀꼬리/ 암수한쌍 다정한데/이 내 몸은 누구와 함께 돌아갈까”/

어쩌면 나라의 절대적 권위가 있는 임금으로 가지 말라고 명령을 하며 잡을 수 있으련만 사랑하는 여인을 잡지 못하고 한숨짓는 모습은 사랑의 순수성이요 여린 마음의 성정을 말해준다.

다음으로는 백제가요로 오직 하나만 전해오는 정읍사를 생각할 수 있다.

어느 행상인의 아내가 남편에 대한 질서와 사랑을 말해주는 내용으로 “달 님이시여/ 높이 좀 도드샤/어긔야 머리 곰/ 비취오시랴”

이 장터에서 장사를 하다가 다음 장터를 향해 어둔 밤 짐을 어렵게 지고 이동하는 남편을 위해 달을 향해 간절히 비는 모습이다.

“진대랄 디디올세라” 고르지 않을 길가에 빠질까 걱정된다며 부른 이 노래는 부부간의 질서와 애틋한 정이 있다.

물론 고대가요의 공무도하가에서도 아내의 남편에 대한 간절한 정을 볼 수 있다.

나는 간다는 말도/못다 이르고 가는가/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여기 저기 떨어진 잎처럼

한 가지에서 나고/가는 곳은 모르는 구나/의 작품에서 보듯

또한 신라시대의 화랑 등 상류층의 작품으로 알려진 향가에는 우리 민족의 기백이 잘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제망매가에서 보듯 인간애적 가족애를 노래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오면 평민가요로 대중성을 가지고 있는 가시리를 볼 수 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날러는 어띠 살라고/ 바리고 가시리잇고/잡사와 두어리 마나난/ 선함면 아니올세라/셜온님 보내옵나니/ 가시난닷 돌셔오셔서”

사랑하는 사람이 간단다. 사랑하기에 잡아야 하지 않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잡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잡지 못한다.

잡으면 기분이 나빠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가는대로 돌아서 오란다. 싫어서 간다는데 누가 바로 돌아오겠는가? 참으로 여린 마음의 정이라 하겠다.

조선시대에는 충과 정을 말한다.

가사문학으로 전해오는 관동별곡, 정과정곡, 그리고 사미인곡을 보면 연군의 정을 말해주고 있다.

 

정과정곡(鄭瓜亭曲)

내가 임(임금)을 그리워하며 울고 지내니/ 산에서 우는 접동새와 내가 비슷합니다./

(나를 모함하고 헐뜯는 말들이 사실이) 아니며 거짓이라는 것을, 아!/지는 달과 새벽 별은 아실 것입니다./ 죽어서라도 임과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임에게 나를 귀양보내야 한다고) 우기던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잘못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뭇 사람들이여!/ 슬프도다. 아!/임이 나를 벌써 잊으셨습니까?/ 아아, 임이시여! 다시 (마음을) 돌리시어 (나를) 사랑해주소서

또한 현대에 와서 김소월이 “진달래 꽃”을 볼 수 있다.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생각하면 어리석을 만큼 그토록 사랑하는 임이 떠나간다는데 가지 말라 말도 못하고 가는 길에 영변에 가서 진달래꽃을 따다 뿌려 줄테니 땅도 밟지 말고 꽃잎따다 가라 한다.

얼마나 여린 마음의 성정인가. 이런 마음의 정이 우리 민족의 정통성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우리 민족에게는 첫째 순수의 정으로 둘째 부부간의 질서와 정으로 셋째 가족애로 넷째 애국심으로 특별히 여린 마음의 정이 우리 민족의 정통성이 되어 반만년을 이어오고 있음을 본다.

한쪽은 육지요 해안선의 길이로 동서남을 이어 반도가 된땅.

귀여운 토끼가 되었고 호탕한 호랑이가 되었으니 절대자의 섭리로 아롱진 곳 중국과 함께하는 서해에서 대양을 품은 동해로 아기자기 섬을 안고 돌아돌아 남해에 위대한 꿈 펼쳐 나아갈 태평양을 응시하며 가슴을 열고 사해를 향해 어엿하고 버젓함으로 다민족 다문화가 펼쳐질 이 나라, 이런 가운데에서도 우는 우리에게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을 계승하여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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