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한국경제 매거진 서산·당진 본부장 이 재 현

나라를 위하여 절의(節義:절개와 의리)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을 열사(烈士)다.
칭한다고 사전에서 해석하고 있다. 대통령은 모든 시민들이 잘 알기 때문에 생략하고 싶다.

전북 남원에서 금지(金池)중학을 졸업하였으며 1960년에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였던 김주열열사는 입학한 첫해 이승만정권의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마산데모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시민과 학생들은 평화적 시위를 벌이고 있었는데 이를 강제 해산 시키던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다가 김주열은 실종되었다.

경찰은 강경진압과 무차별 발포로 인해서 희생자가 속출(續出)하는 바람에 분노가 극에 달한 시위대는 주변의 남성파출소와 북마산파출소 및 경찰관서, 경찰서장 자택 그리고 부정선거 주범인 자유당 소속 국회의원들 집을 습격했다.

이때 실종되었던 김주열의 시신이 경찰의 강경진압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부정선거를 피를 정부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는 극에 치닫게 되면서 결국 ‘제그마산데모’가 일어나게 되었다.
김주열의 죽음으로 서울에서 2만여 명의 학생들이 총궐기에 나서면서 4.19혁명이 발발되어 결국 5월1일 이승만대통령의 하야성명까지 이끌어 내게 되었다.

이승만(李承晩 ; 1875~1965) 대통령은 1945년 초대, 2대, 3대 대통령을 하고 부정선거로 4대까지 하려다 김주열열사의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마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떠올랐던 열사의 죽음에 많은 국민들의 시위로 손을 들게 된 것이다.

오는 4월 9일부터 11일까지 남원 김주열열사 묘소에서 마산국립 3.15묘지까지 186km를 1km씩 나눠 이어 달라는 소통(疏通)화합을 위한 186 김주열 대장전에 나선다고 밝혔다.
186이란 숫자는 김열사의 묘소에서 국립 3.15묘지까지 거리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3.15와 4.19 당시 희생자 숫자이기도 하다.

4.11은 김열사의 시신이 마산만에 떠올라 인양된 날이자 마산시민 제2차 봉기가 시작된 날로 이날을 기점으로 전국적인 시민항쟁이 일어나 마침내 4.19로 이어진 날이다.
대회조직위(위원장 김영만 ; 마산상고동기)는 남원에서 채화된 성화를 들고 구간별로 기본주자 20명씩 마산까지 이어 달리도록 한다는 방침이며 구간별 형편에 따라 최소 3명에서 186명까지 참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코스는 남원 김열사 묘소에서 함양까지 40구간, 함양서 산청까지 23구간, 진주까지 52구간 다시 마산까지 40구간 등으로 2개도 5개시군을 거치게 된다.
조직위는 호남의 학생으로 영남으로 유학 온 학생이었던 김주열(金朱烈 ; 1943~1960) 살아서는 남원의 아들이요. 죽어서는 마산의 아들로 동서화합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이번 행사를 계기로 장기적인 범국민 행사가 될 수 있도록 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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