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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경성고보를 대표하여 3.1혁명에 참여한 당진출신 박쾌인Ⅲ

2018. 06. 25 by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일제가 밝혀낸 학생조직의 실체는 방대했다. 경성시내의 전문대생을 비롯해 고등보통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학생조직이었다. 이들 식민지 조선의 학생들은 1919년 초 형성된 국제정세의 변화속에 조선이 독립해야 한다는 능동적인 의지를 모아냈고 조직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학생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파리강화회의에 조선독립의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독립선언과 전국적인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였다. 이때 전면에 나섰던 것이 전문대생이었고, 전문대생들은 지방 출신으로 경성에 하숙하고 있던 하숙생이나 자신의 출신 고등보통학교 후배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확대하였다.

학생조직은 보성법률상업학교의 강기덕, 연희전문학교 김원벽, 경성의학전문학교 한위건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을 이끌고 시위를 주도했다. 이들 학생조직은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 등 민족대표 33인이 준비하는 독립운동과는 별도로 독립선언과 시위를 준비하였다. 보성법률상업학교 졸업생 주익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2월20일경 인쇄하여 배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기독교계의 박희도를 통해 종교계에서 통합이 이루어져 민족 전체적인 차원에서 대규모로 독립선언과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했으니 학생단체에서 별도로 하지 말고 함께 독립운동을 하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학생들은 별반 고민없이 민족적 대의를 알리는데 힘을 합치기로 하고 종교계가 준비하는 독립운동에 합류하였다.

마침내 종교계와 학생들이 참여한 거족적인 3.1독립선언 지도부가 구축된 것이다. 3.1만세 시위에서 학생조직이 담당한 역할은 각국 영사관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전국 각지에 『조선독립신문』을 전달하는 임무와 함께 군중 동원을 책임졌다. 또한 학생조직은 조선의 독립이 일회성 시위를 통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시위 계획을 일회성으로 그칠 것을 우려해 3월1일, 5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학생 지휘부도 2선까지 꾸려놓았다. 1선이 체포되면 2선이 맡아 거리 시위를 이어간다는 계획이었다.

박쾌인은 이러한 학생조직에서 김극평, 박노영과 함께 경성고보를 대표하여 참여하였다. 2월 초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박쾌인은 3.1만세 시위가 열리던 날 경성고보 학생들을 파고다 공원으로 참여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경성시내를 돌며 3.1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박쾌인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던가, 3월5일 남대문역 만세시위에 참여 여부는 완강하게 부인하였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경성고보의 주요 활동가였던 박쾌인이 경성시내 학생들이 배포하였던 독립선언서의 배포와 남대문역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래도 사실관계를 부인함으로써 책임을 면하고자 하는 뜻이 컸을 것이다.

박쾌인의 사회의식 정도 역시 조선총독부 신문조서로 남아 있다. 박쾌인은 “독립운동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라는 일제 검사의 물음에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떨어져 별도의 정치를 하도록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답하였다. “그렇다면 독립선언을 하고 만세를 부르면서 다니는 것이 그 독립운동인가”라는 물음에 “당시 강화담판으로 민족자결주의가 창도되어 愛蘭(아일 랜드) 波蘭(폴란드)가 모두 그 주의에 의해 독립하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조선도 불쌍한 상태에 있으므로 심혈을 기울여 발표하면 강화회의에서도 이것을 인정해 줄 것으로 생각하고, 그 방법으로서 독립선언을 하고 만세를 부르며 독립의 희망을 발표하고 또 한편으로 시위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여 3.1혁명을 주도했던 당시의 주도세력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어서 “장래에도 독립운동을 할 작정인가”를 묻는 질문에 “장래 독립할 시기가 오면 또 운동할 작정이다“ 라고 분명히 말하였다.

이상을 종합하여 보면 박쾌인은 3.1혁명 주도세력의 하나였던 학생조직에 가담하여 참여한 의식적 참여자였고,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회적 의식이 높은 청년학생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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