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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 지명유래
김추윤 박사
장승백이
2017. 11. 20 by 당진신문

 옛날 절이나 촌락입구에 서있어 길가는 나그네의 이정표(里程表)를 알려주거나 마을 역신을 방지하는 등 우리 인간생활과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장승은 대개 높이 3~5m이고 숫장승으로 웅장승(雄長丞)인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암장승으로 치장승 (稚長丞)인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의 한 쌍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도 시골의 곳곳에는 이런 장승이 많이 남아 있다. 장승 명칭은 촌락지명, 고개명, 터지명 등 다양하게 붙는데 촌락지명으로 유명한 것은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 등의 장승백이다. 이 근처에는 장승백이 가구점, 장성주유소 등 장승에서 유래한 상호명이 많다. 당진에도 장승백이와 관련된 촌락지명, 고개명, 길지명, 터지명이 현재 남아있다. 당진에는 주로 옛날 장승이 있던 터지명이 대부분 전해 내려오는데, 최근에 다시 깎아서 세운 목장승이 용연리에서 당진시내로 통하는 고개 마루터 도로공원과 송악읍 반촌리 도로변 공원에 있다. 현재 마을 주민들이 송산면 명산리 멍성골과 송악읍 가학리 쇠학골 경계지점에 돌장승을 세워서 매년 정월 대보름날 새벽 해뜨기 전 오시에 서낭제를 올리고 있다.

당진시에서 장승과 관련된 지명을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유투나무골장승은 당진2동(옛 당진읍 용연리 유투나뭇골)에 있던 장승터로 예전에 장승과 서낭당이 있었다. 장승배기터는 당진3동(옛 당진읍 우두리 상우두와 배울사이)에 있는 터지명이다. 안섬장승배기는 송악읍 고대리 안섬 서낭당 옆에 있는 터이다. 장승배기는 송악읍 반촌리 반바지 동남쪽에 있는 터지명이다. 장승백이는 석문면 삼봉 3리 장승백이재에 있는 지명이다. 다라실 장승배기는 송악읍 월곡리 다라실 서낭당 옆에 있는 터이다. 장승배기터는 우강면 세류리 중뱅이 동쪽에 있는 터이다. 장승배기 고개는 합덕읍 대전리 건너말 북쪽에 있는 고개이다. 장승배기 길은 합덕읍 석우리 돌모로 남쪽에 있는 길이다. 한편 장승은 볼 수 없으나 옛날부터 장승이 표상적으로 박혔던 곳이기에 장승백이로 불리는 지명은 많다. 본래 장승은 선사시대 이전부터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 살면서 주거지역 주위에 돌이나 큰 나무를 가져다 놓거나 나무나 돌 주위에 주거지를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장승 중에 고성의 석마가 가장 오래 됐었다고 한다.

장승의 어원은 1527년 최세진이 『훈몽자회(訓蒙字會)』(중권 제9장)에서 후(堠)를 설명하면서 ‘당승 후’ 라 기록하였으며, 이 ‘당승’이 ‘쟝승→장승’ 으로 변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장승의 한자어 표기는 장생(長生, 長栍)으로 나타나며 조선시대에는 ‘당생’ 이라 발음했지만 이도 ‘ㅤㄷㅑㅇ승→쟝승→장승’ 으로 변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장승을 부르는 명칭에는 장생, 장성, 장싱, 장신 벅수, 벅슈, 벅시, 후, 수살, 수살막이, 수살목 등이 있다. 명칭으로 보아 장승이 일반적인 용어이며, 한자어로는 장생(長生, 長栍), 장성(長性), 장신(長神), 장승(張丞) 등으로도 쓰고, 사투리로 장싱이라 부르는 곳도 있다. 장승은 여러 이름이 있으나 주로 장승이라는 표준말로 통용되어 왔다. 20-30년 전 만해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미신을 타파하고 부락제의 경비를 절감한다는 이유로 우리 주위에 거의 없어지거나 방치되어 왔다. 장승의 쇠퇴 원인은 주로 서양 종교의 급속한 전파, 경제력 향상, 주거지역 발전 도로 개발, 의학의 발달, 교육수준의 향상, 전래 풍습을 멸시하는 국민의 무관심 등을 들 수 있다.

장승의 주요 기능은 첫째, 부락수호로 흉년, 재앙, 유행병 등을 가져오는 귀신이나 역신을 겁 주어 쫓아 보내는 것이다. 둘째, 방위수호로 방위가 허한 곳에 각 방위에 해당하는 오방신장을 배치하여 방위를 지키는 것이다. 셋째, 산천비보(山川裨補)로 풍수 도참설에 의하여 국가의 연장과 군왕에 장생을 기원하기 위하여 사찰 주위에 세우는 것이다. 넷째, 읍락비보(邑落裨補)로 고을과 마을에 지맥이나 수구(水口)가 허한 곳을 다스리기 위해 세우는 것이다. 다섯째, 불법수호 로 사찰 입구에 세워 경내의 청정과 존엄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여섯째, 경계 로 농경과 수렵 및 땔감을 얻는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우는 것이다. 일곱째, 노표 로 이정표 및 방두의 노신을 겸했던 제도적인 장생이다. 여덟째, 성문수호(城門守護) 로 중국에서 오는 역병이나 재앙의 침입을 성문에서 제지하는 것이다.

장승의 눈은 크게 통방울 눈과 봉눈으로 나눌 수 있다. 통방울 눈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눈을 크고 사납게 표현한 것을 말한다. 봉눈은 그 외에 평범하거나 작게 만들어 긴장감이 없다. 주먹코, 긴 코, 납작코, 빈대코, 둥근 코, 세모 코, 매부리코 등이 있고 주로 주먹코를  많이 만든다.  호남 지방에서는 윗니가 아래 입술을 지긋이 물었는데 한결같이 좌, 우 송곳니가 빠져 나와 사나운 형상이라 할 수 있다.

중부지방에서는 목장승, 법수에서 흔히 보이는 숱이 별로 많지 않지만 길고 수염이 많다. 남부지방에서는 석법수의 숱이 많고 긴 턱수염, 그 외에도 땋은 수염, 갈래수염 콧수염 등이 있다. 특히 영,호남 지방은 정성스레 수염을 표현한 배려가 엿보인다.  귀는 따로 조각하여 붙인 것도 있으나 거의가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중부지방은 귀가  있으나 남부지방은 거의 귀를 만들지 않는다.

재료는 흔히 우리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소나무를 많이 사용했다. 간혹 수명이 긴 밤나무를 이용하기도 한다. 또는 장승에 황토 칠이나 페인트 칠을 해 수명을 다소 연장하기도 한다. 부패의 원인인 균류와 곤충 외에도, 공기, 온도, 수분 등에 의해 변화가 빨리 온다. 또 장승을 돌 무더기로 세운다든지 아니면 거꾸로 제작하면 다소 수명이 연장된다. 장승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흔한 암석인 화강암을 많이 사용했다. 옛부터 불교조각으로 화강암을 깍았던 기술로 장승도 제작하였다. 이 화강암은 석질이 견고하여 풍화나  마멸에 잘 견딘다. 결점은 세밀한 조각이 어렵고 화재 등 고열에 파열이 용이하다. 중부지방에는 거의가 돌 장승을 세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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