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준 영 / 호서고 교장

작년 이맘때 32년 간 근무했던 호서중학교를 떠나 지금의 호서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젊은 날, 교단에서 간절한 눈빛으로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 제비 같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청운의 꿈을 키웠던 시절을 다 보내고 이제는 학교 경영의 막중한 책임을 갖게 되었으니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세월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같은 법인 내 상급 학교이기에 행정적인 면에서는 별 부담이 없었으나 인생 ‘최대’의 목표라 말하는 대학 입시를 앞둔 아이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나를 40여 년 전 학창 시절로 되돌리는 듯했다. 우려와 기대 속에서 호서고등학교에서의 내 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학 입시를 목전에 두고 있는 고등학교의 교장이라는 자리는 ‘학력 신장’을 최고의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 학교에서는 이미 4년 전부터 파격적인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전문성과 선의의 경쟁이 가져오는 효과는 이제 그 어느 학교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까지 도달했다고 자부한다. 충청남도 내 고등학교 중에서 최초로 시행한 ‘무학년제 학생자율선택형 방과후학교’. 긴 이름만큼이나 학습 수요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여기에 참여하는 교사들의 분업화, 전문화를 통한 공교육의 경쟁력 제고는 아이들로 하여금 과거에 행했던 ‘일률적 보충학습’으로의 회귀를 극렬하게 거부하게끔 만들었다.

나의 학습 계획에 따라 강좌와 선생님을 선택하는 이 프로그램은 학년의 벽마저 깨뜨렸다. 학년이 같다고 하여 학습 능력이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자율이고 수준별 학습이다. 바로 호서는 이러한 변화마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2008학년도에 접어들어 당진군에서도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위해 많이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종로학원과의 협약을 통해 지역 우수 인재에 대한 교육에 많은 교육 경비를 투자하고 있다. 아직도 교육 환경이 열악한 우리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단 이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더없이 좋은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변화의 바람은 선생님들에게도 있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의미 있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 학교는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교사 수업공개’를 실시하고 있다.

소위 동료 장학이다. 전 교사는 연간 1회 본인 수업을 동료 교사에게 공개하고 참관인은 참관록을 작성하여 공개 수업을 한 교사에게 주어 자신의 수업의 장·단점을 알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한다. 자칫 자기 세계에 빠져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는 교사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한다.


올해 1학기에 아이들은 또 한번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군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등학교이고 그만큼 크고 작은 행사도 꽤 규모 있게 이루어진다. 지난 5월 학교 축제인 ‘밤절제’를 준비하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내 마음을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부족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축제를 성공적으로 열기위해 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내가 교단에 선 것 자체가 자랑스럽게 여겨질 정도였다.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통한 자율과 책임감의 고취. 마음껏 발산하는 젊음과 패기. 우리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갖추어야 할 대부분을 완벽하게 가지고 있었다.


예전 중학교 근무 때도 그랬지만 고등학교에 와서 보니 여전히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이다 보니 경제력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행하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 버렸다. 누가 ‘개천에서 용 난다.’고 했던가? 내가 보기에는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난 듯 하다.

학업을 위한 기본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데 있어서 경제력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인다. 담임선생님을 통해 그런 아이들을 몇몇 만났다. 그중에는 예전에 중학교에서 가르쳤던 제자의 아이도 있었다. 그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용기’라고 생각했다.

내 주머니를 털어 몇 푼 안 되는 장학금을 주는 것도 의미 있었지만 그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 습관처럼 하고 있는 ‘책 선물’을 하기로 했다. 중학교 근무 시절에도 아이들에게 참 많은 책을 선물한 기억이 있다.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이겨내는 용기를 주는 것이 노 교사가 교육의 현장에서 제자들에게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아닌가 생각했다. 늘 미소를 잃지 않고 바르게 생활하는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지금도 가슴 벅참을 느낀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다. 학교를 경영한다는 것이 단순히 이익을 창출해 내는 기업을 운영하는 차원이 아님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인간이 인간을 다루는 것만큼 조심스러운 일이 없다.

교사는 바로 그 최선봉에 서 있는 사람들이고 그 조직을 조율하는 일이 내 역할이다. 그래서 나는, 학력 신장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진취적인 청소년과 그들을 올곧게 키워나가는 교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에 그리며 그들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