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청소년의 아버지, 인간상록수로 불려오며 온 인생을 봉사에 몸 바쳐왔던 김상현 옹이
지난 18일 새벽4시경 당진읍 자택에서 타계했다.
김 옹의 타계소식이 전해지자, 당진의 모든 군민과 설성동문, 그리고 그를 아버지처럼 모셔온 수많은 청소년들은 큰 충격에 싸였다.


향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 옹은 가난과 불운에 찌들려 자신의 가정도 제대로 돌볼 겨를이 없던 상황속에서도 돈이 없어 불행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길을 연 선각자였다.


그의 인도를 받은 제자 2.000여명이 사회각계에 진출해 나라의 주역으로 굳게 서 있기도 하다.
이글에 담겨진 그의 행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타계하기 직전까지 성자의 삶을 살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던 거룩하고 고귀한 그의 뜻을 알리고 간직해 이세상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표가 되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정윤성 기자 psychojys@hanmail.net


故 김상현 옹



1924년 음력 12월 2일 당진읍 수청리에서 출생한 김상현 옹은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독학으로 어렵게 청주상고에 진학, 우수한 성적으로 청주상고를 졸업한 그는 당시 조선금융조합에 취직했으나 일본에 의해 강제로 징병을 당한다.


이때 그는 고학력인 자신에게 일본인들이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일제의 압권적 치하에서 헤쳐나갈 수 있는 바른 길은 우리 국민들이 무지에서 깨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그가 꼭 고향으로 돌아가 형편이 어려워 배우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터 주도록 헌신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그 후 광복 이듬해인 46년 고향에 돌아와 안정된 생활기반을 잡은 그는 당진군 수청리에 고등공민학교를 세워 문맹퇴치를 하는 것으로부터 가르침의 길을 열게 된다.


“말이 학교지... 군부대 옆에 천막치고 초등학교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무조건 데려다가 같이 이불속에서 자며 공부를 시켰어. 끼니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던 때라 적십자사에서 밀가루와 옷수수를 타다 쪄 먹이며 가르쳤지”<1994년 언론사와의 인터뷰>


마지막 졸업식

그는 다시 62년 당진읍 읍내리 면사무소 창고에 재건중학교를 설립, 본격적으로 사회봉사사업을 전개한다. (같은해 그는 적극적으로 봉사를 돕던 부인이 과로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64년 그는 부친으로 물려받은 남산뒤편 공터에 중학교 과정인 설성농업학교에 이어 2년후에는 고교과정의 설성상업 전수학교를 세웠다.


이때 자칫 부랑아로 전락하기 쉬운 신문팔이 구두닦이, 고아 등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을 입학시켜 고교과정까지 선도하며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설성상업전수학교는 79년 2월에 문을 닫아야 하는 불운을 만나게 된다.


이유는 문교부에서 학교평준화 규정을 신설하면서 수업료를 받지 않으면 부조리라고 지적, 수업료를 정상적으로 받거나 폐교할 것을 선택하게 한 것이다.
당연히 학교에는 수업료를 제대로 낼 수 있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눈물을 삼키며 폐교를 결심했다.


“엄동설한에도 상록수는 늘 푸르름을 잃지 않습니다. 학교는 문 닫아도 서러워하지 맙시다.” 그렇게 그는 마지막 졸업식장에서 눈물로 제자들을 떠나보냈다.


값진 재산

학교는 폐교했지만 그의 선도열은 식지 않아 법무부 갱생보호 위원으로 위촉받아 출소자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관내 비행청소년 60여명을 위탁받아 선도한다.
또, 89년 보호관찰소 창설때부터 현재까지 보호관찰 대상자 등 94명에 대해 취업알선 숙식제공은 물론 정서적으로 메말라 있는 이들에게 아버지 역할까지 해왔다.


“아흔 네명중 한 명이 재범을 해서 소년원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최선을 다해도 재범을 하는 데에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비행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삐뚤어진 시각은 그들에게 재범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그가 그동안 받은 상은 94년 중앙일보 법무부가 주최한 보호선도대상을 비롯, 주부클럽협회가 제정한 훌륭한 아버지 상 등 50여개에 이른다.
재산을 모으는 일에는 영락없이 낙재 인생을 살아왔지만, 그는 “그동안 젊은이들을 길러온 것보다 더 값진 재산은 없다”고 흐뭇한 미소를 띠운다.


終身行善 善猶不足(종신행선선유부족)-‘선을 평생동안 베풀어도 오히려 선이 부족하다’ 그의 좌우명이다.

<출처:「인간상록수 김상현」, 이인화 지음, 2000년 상록출판사 발행>



그가 한 평생 해 온 봉사활동은 전 지면을 통한다 해도 한없이 부족하다.

다음기사에는 그의 희생정신이 잘나타나 있어 끝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상으로 받은 금반지 팔아 구두닦이 10명에게 겨울옷”


교육유공표창을 받은 사설중학교 교장이 부상으로 받은 금반지를 팔아

불우청소년, 구두닦이 아동들에게 내복을 사주어 주민들의 칭송이 높다.


당진군 당진읍 읍내리 설성중학교 교장 김상현 씨는 지난 66년 11월 7일
교육유공자로

전국에서 선발되어 대한교육연합회의 표창을 받은 바 있는데 부상으로 받은 금반지(3돈)

를 팔아 구두닦이 소년 한현수 군(19) 등 10명에게 동 내복 1벌씩을 사주고 이들을 위로했다.


김상현 씨는 지난 61년부터 사재를 털어 불우청소년을 위한 설성중학교를 설립하고

중등교육을 시키고 있는 산 상록수다. (1972)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