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이선우 작가] 40대라 불리는 십 년 가운데 1년이 저물어간다. 이제 다음 달이 지나면 내 나이 40+가 된다. 40, 마흔, 불혹. 공자 왈 세상일에 갈팡질팡 하거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쉽게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어진다는 그 나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끝없이 흔들리는 작은 배였다. 혼란과 미혹의 마흔. 남은 9년의 40대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그 다음에 찾아올 50대는 또 어떻게 살게 될까?

서울시는 중장년층을 위한 지원정책 및 사업, 상담, 교육, 사회공헌형 일자리, 건강, 재무 등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50+ 세대 전용 포털을 운영한다. 50이후의 삶을 준비한다는 슬로건이 따라붙는다. “51년생 김현자, 당신의 내일을 서울이 연구합니다.” 라는 버스정류장 광고를 보고 사진을 찍었다.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에 또 만나게 된 다른 버전의 광고. “93년생 이진욱, 당신의 내일을 서울이 연구합니다.” 이번에도 사진을 찍었다. “79년생 이모씨, 나의 내일도 당진이 연구해주면 참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진짜 연구들을 열심히 하는지 실상은 확인할 길이 없지만 당진시민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일면 부러운 장면이기도 하다. 서울에 일터를 두고 당진에 살면서 출퇴근을 감행하던 30대 초중반의 나는 일하지 않는 40대의 나를 생각하거나 상상해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삶은 한순간에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얼마간은 일하지 않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 항상 미안했던 아이들에게 한껏 다정한 엄마노릇도 하고 주부 흉내도 냈다. 물론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엉켜버린 실타래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난 이제 당진에서 뭘 해야 할까?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이 나인가? 지금 이 순간 내가 손 뻗고 있는 일들이 나인가? 풀리지 않는 갑갑한 화두 하나를 품고, 외롭고 속없는 갈대처럼 작은 바람에도 휘청거렸다.

그러던 가운데 아이들과 함께 꿈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사전 준비를 위해 엄마들 몇이 뜻을 모아 이런 저런 공부를 하고 전문가를 만나게 되면서 작은 변화를 맞고 있다. 나는 뭘 좋아하고 무슨 생각을 할 때 행복하고 어떤 일을 할 때 가슴이 뛰는지, 아이들에게는 페이퍼를 내밀며 적어보자, 생각해보자 했지만 정작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나’를 들여다보자는 제안. 우리 아이들을 넘어 이 지역의 청소년들과 함께 해볼 수 있겠다는 비전을 그리며, 각자의 ‘라이프워크’를 찾아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라이프워크는 내 일생을 걸고 그려나갈 나의 삶이다. 그 한 형태가 직업이라는 도구로 나타날 수 있다. 직업을 찾게 될지 비전을 그리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시작만 하면 금방이라도 길이 열릴 줄 알았다. 편안하게 고르고 쓰고 생각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주변을 맴돌 뿐, 너무 많은 생각과 높은 기준에 갇힌 나는 혼돈 속에 떠있다.  

이 프로젝트를 중학생 때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다행히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거나 학과를 선택하는 불운을 겪지는 않았지만 중고등학교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금 더 넓고 깊게 그리고 진지하게 미래의 내 삶을 설계했을 것임은 확실하다. 그러니 기왕에 자유학년제라는 이름으로 직업을 ‘체험’하느라, 과학 실험을 하느라, 혹은 반대로 사교육에 올인 하면서 ‘시험 없는 1년’을 보내는 중학생들에게 작정하고 권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뭔지, 내가 행복할 때는 언제인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깨닫고 어디에 그 열정과 재능을 쏟아 부을지 먼저 고민해보자고 말이다. 아도르노를 안 읽어서, 자이로스코프 물리와 신무역이론을 몰라서 수능 문제 못 풀어도 지구가 망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를 모른 채 살다보면 헛발질만 는다. 40플러스 이모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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