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농부 만나는 날, 당장

[당진신문=이선우 작가]

‘농산물의 기능이나 화폐 가치에 함몰되지 않고 물품 자체의 본질적 가치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그리고 ‘그 가치와 의미를 소비자와 나누자.’

[당진시농업기술센터]에서 마련한 파머스마켓 기획과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평소 농사일 돕기는 고사하고, 고작해야 1년에 두 어 번 정도 부모님이 길러낸 농산물 판매나 거들던 나는 파머스마켓 기획과정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공고에 마음을 빼앗겼다. 친정집의 농산물 판로는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찾아준다면, 그 판을 내가 깔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뜬금없는 자신감에 휩싸였다. 하필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이 물정 없이 차오르는 3월이었다. 

교육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됐다. 꽉꽉 채워 진행되는 수업에 한 번 놀랐고, 노곤한 몸을 곧추세우며 그 시간을 다 채워가는 농부님들에게서 두 번 놀랐다. 함께 팀을 꾸려나갈 멤버들 간의 소통을 위한 갈등관리, 농산물 홍보와 판매 전략을 고려한 SNS 활용, 매력적인 시장을 만들기 위한 브랜드 전략 등을 배우며 한 주 한 주를 지나왔다. 

다른 지역에서 주목받고 있는 마켓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 알고, 무엇을 쓰는지 알고 그래서 내가 지갑을 여는 것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는 서울의 마르쉐 시장은 신선한 자극제였다. 조용한 북한강변 한쪽에 꾸려진 소꿉놀이터처럼 느껴졌던 리버마켓. 세련되지는 않아도 정감이 넘치고, 북적거리는 가운데서도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3월부터 시작된 교육은 파일럿까지 해서 모두 세 번의 장을 열고 마무리 중이다. 첫 번째 파일럿 마켓은 어리바리하게 지나갔고, 감자꽃을 구해다 주신 엄마의 노고에 힘입은 두 번째 장은 정말 재미있었다. 어느 지인의 말처럼 정말 소꿉놀이 하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지난 9월 15일, <우리 동네 농부 만나는 날, 당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세 번째 장은 불편함에 대한 도전이었다.

“일회용품을 안 쓰고도 장사를 할 수 있을까?!” 나름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했다. 찐 옥수수는 일회용봉지 대신 며칠 전부터 열심히 접어두었던 신문지봉투에 담아 건넸다. 간혹 아이가 쥐고 먹을 수 있게 나무젓가락을 끼워달라는 분들이 있었는데 역시나 도움은 못 드렸다. 텀블러가 없는 분들에게는 식혜를 판매하지 않았고, 식혜가 맛있다고 다시 온 손님에게는 주문한 돈만큼이 아닌 신이 난 내 마음만큼 가득 채워 드렸다.

참새처럼 왔다갔다 옥수수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더디기만 한 찜솥 때문에 애가 타기도 했고, 아이들이 조막만한 손으로 내미는 나뭇잎 쿠폰을 받기는 왜 또 그리 어렵던지. 귀여우니까 하나 더, 오래 기다렸으니 하나 더, 내년에 학교 들어가니 하나 더, 이런 저런 이유로 하나씩 덤을 더 쥐어주고서야 미안한 마음이 조금 가셨다. 이리 보나 저리 훑으나 장사하긴 영 글러먹은 인간임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다시 장에 선다. 올해 마지막 장이기도 한 다음 <당장>은 당진이 아닌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세종예술시장-소소>와 함께 한다. 10월 13일과 14일 이틀간! 에브리데이 어스데이(every day earth day)라는 카피 아래 그린디자인, 쓰레기 제로 등의 사회적 이슈에 동참하는 예술시장 소소.

우리 <당장>의 농부들은 조금은 번거롭고 불편한 그 가치를 지지하고 기꺼이 동참하려 한다. 팔겠다는 열의는 한 17%쯤 부족한 왕초보 셀러 주제에, 생각만 해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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