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학생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 열려

올해로 99주년, 100년 전에 벌어진 면천공립보통학교의 3·10학생독립만세운동이 재현됐다.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 기념사업회’(회장 조이행, 이하 기념사업회)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9년 3월 10일, 면천의 공립보통학교에서 벌어진 만세 시위 운동을 재현했다. 올 해로 11번째를 맞이하는 행사다.

면천초등학교 옛 교정에서 벌어진 기념식에서는 학생대표의 독립선언문 낭독과 3·10학생독립운동 노래를 제창하고 만세삼창을 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은 3·10학생독립만세운동 기념광장까지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3·10 만세운동은 당시 16세였던 면천보통학교 원용은 학생이 서울의 3·1운동을 목격하고 당진으로 내려와 동급생인 박창신(18세), 4학년 급장인 이종원과 함께 만세운동을 조직했다. 학생들은 면천 동문 밖 저수지에서부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천보통학교 정문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원용은이 당목(옷감)으로 10척 장폭의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현수막과 태극기를 만들어 앞장 세웠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4시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은 광주학생항일운동보다 10년이나 앞선 학생주도의 독립운동이다. 충남에서는 최초의 학생운동이다. 이 만세운동의 주모자를 찾았던 공주 현병대는 배후 인물이 없음을 알고 만세운동을 주도한 원용은 학생과 박창신 학생을 공주형무소에서 잡아가뒀다. 이들은 결국 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해 졸업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같은 자랑스런 의거는 26년이나 더 지속된 일제의 폭압 아래에서 한동안 잊혀져왔다. 그러던 것이 1977년 당시 급장이었던 이종원 선생의 회고록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공주형무소 기념사업회 역시 2008년이 되어서야 조직됐다.

기념사업회의 조이행 회장은 “3·10독립만세운동이 지나간 한 시대의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비추고 있는 등불”이라면서 “우리 후손들에게는 이러한 학생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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