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미

사람관계
                                                         이종미


올여름 더위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찜솥단지’다. 사람의 체온에 가까운 폭염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습도마저 연합하여 세력을 떨치니 마주치는 사람마다 뜨거운 물 한바가지 씩 뒤집어 쓴 시금치 꼴이다. 녹아내리는 빙하며 아사직전의 북극곰을 보여주며 해마다 상승하는 지구의 온도를 걱정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네들의 말을 콧방귀라도 꿨더라면 이런 날은 오지 않았으리라.

불볕더위를 뚫고 직장에 나갔더니 여름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사들이 출근하였다. 전력거래소 중앙관제센터는 연일 전력수급경보를 ‘관심’이니 ‘주의’니 하며 발표한다. 이런 실정에 에어컨은 고사하고 전등마저 켤 수 없어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다들 더위와 싸우며 일하는 것이다. 점심 식사 후 한낮의 불별 더위를 피해 딱히 손님도 없는 식당에서 오랜만에 여교사들만의 티타임을 가졌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중 옷장 속 곰팡이로 화재가 바뀌었다. 살림에 무관심해 뵈는 분이 작년 겨울에 사서 두서너 번 입고 보관하던 가죽옷에 검은 곰팡이가 폈다고 울상이다. 대다수의 선생님들이 햇볕에 말려 손으로 비비거나 식빵으로 문질러 보라느니, 세탁소에 맡겨 옷 상하게 하지 말라느니 공감과 조언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대화의 방관자였다. 약 십오 년 정도 살아온 우리 집은 남향이어서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도 잘 들어 아직까지 곰팡이로 크게 마음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여름은 유별나게 습기가 많으니 집에 가서 빛 좋은 날 한 번 쯤 햇볕 쬐기, 바람 넣기 정도는 해 보리라 마음만 먹었다.

90% 이상의 적중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기상청에서 두 달 가까이 지속된 장마는 이제 끝났다고 한다. 보송보송한 옷과 이불을 상상하며 다소 시끄럽기는 하지만 여름을 대표하는 매미소리 들으며 입추를 고대하였다.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나 혼자 헛물만 켰나보다.  입추 하루 전 천둥번개를 동반한 기습호우가 내리질 않나, 심지어는 여우가 시집이라도 가는지 해 뜨고 비가 왔다. 지루하고 짜증나는 장마는 성깔 제대로 드러내며 진상을 부렸다. 이런 날씨에 옷장을 살펴보겠다는 계획을 가마득히 잊었다. 이것은 비단 날씨 탓이겠는가? 요즘 들어 계획과 실행이 즉석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자주 그러는 것이 가는 세월 막을 재간 없는 까닭이겠지.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밍크코트 광고장면을 보았다. 순간, 옷장과 곰팡이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남편의 양복 소매단과 울로 된 티 등 색깔이 짙은 옷 대여섯 개에 곰팡이가 피어나고 있었다. 올봄, 끝자락을 질질 끌며 명료하지 못했던 겨울 때문에 세탁해서 두려다가 한 번씩 더 입고 두었던 옷들이다. 그나나마 색상 짙은 옷에 막 피어난 곰팡이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는 자위를 하며 햇볕 드는 창가에 내다 널었다. 나머지 옷들도 꺼내어 바람을 통해 주었더니 몸은 이미 땀으로 목욕이다.

사람의 마음에도 곰팡이 균사체가 자란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관심 갖고 마음 쓰면 뽀송한 것을 게으름과 무관심을 좆다보면 지울 수 없는 얼룩 투성이 곰팡이가 핀다. ‘잘 있는지, 몸과 마음에 아픈 곳은 없는지, 하는 일은 잘 되는지, 가족은 무탈한지’ 등의 말로 바람을 통과 시켜야 한다. ’보고 싶다, 얼굴 좀 보자, 좋아한다, 사랑한다.‘ 등의 말로 햇볕에 내널기도 해야 한다. 때로는 ’아닌 것은 아니고 잘한 것은 칭찬’ 하여 옳은 길로 걷도록 ’방망이로 팡팡 먼지 털기도 해야‘ 할 것이다.

중국 남방 여러 지역은 물론 우리나라 전역에서도 사십 도를 넘보는 기온이 이어진다고 한다. 더워 죽겠다는 말을 노래처럼 읊조리면서 아직도 자동차가 아니면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는 캥거루족이 있다. 선풍기나 부채로 해결할 수 있는 더위도 굳이 에어컨 실외기를 행인들 쪽으로 돌려가며 더위를 식히는 얌체족들도 있다. 외로움으로 고통 받는 이웃에게 내 더위 식히자고 실외기로 더운 기운을 뿜어 댄다면 이 또한 죄가 될 것이다. 이 더위에 선풍기조차도 사용하지 못하는 이웃이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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