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지들에게 꿔서 마련한 전세금 다 날리게 생겼어요.

유씨(41)는 광양에서 올라왔다. 지금은 9살 8살이 된 아들·딸과 함께 남편의 새로운 직장인 당진으로 이사를 해 왔다. 2011년 5월경에 급하게 이사를 오게 되면서, 확정일자를 늦게 받은 것이 이런 화를 불러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분양금의 60%를 대출을 받았다고는 했지만, 중개사무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집주인의 어머니가 집을 몇 채 가지고 있는 재력가라고 했다. 타지에서 온 입장에서 그런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정신없이 이사 오는 날에 그들이 찾아와 필요한 것도 물어보고 욕실에 고장 난 부품까지 직접 관리 사무실에 연락해 갈아줬다. 신뢰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대출이 많이 껴 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2년치 이자를 선납 한다고 하고, 건설사에 지불유예가 된 3천6백만원이 껴 있는지도 서류상에서는 나와 있지 않아 까맣게 몰랐다. 유씨는 그렇게 3순위 채권자로 밀렸다. 결국 전세집은 경매에 들어가서 낙찰이 된 상태다. 10월까지는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 이번 추석에 친지들을 만나기도 부담스럽다. 전셋집을 얻으면서 부족한 돈을 친지들에게 빌린 입장의 유씨도 친지들께 미안하고, 친지들도 이번 사기건에 대한 걱정이 많다. 차라리 은행권에서 빌린 거였다면, 이자부터 갚아가면서 상환유예라도 가능 할 텐데 한숨만 늘어간다.
또 다른 피해자 김씨(34) 부부는 유씨보다 먼저 입주했다. 입주 하는 날 잔금을 다 치르고 확정일자를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확정일자를 며칠 미루라고 했다. 그 며칠사이에 모든 대출이 이뤄졌다. 김씨 역시 3순위 채권자로 밀렸다. 1년여를 끌어온 경매는 결국 3차에 낙찰되었다. 기자가 찾아간 12일에도 아침 8시30분경부터 법원집행관들이 찾아왔다. 26일까지는 이사를 나가라고 한다. 남편은 다리수술 때문에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일 년 여간 스트레스를 받아온 김씨는 병원에서 간수치가 너무 올라가서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에 박은 철심을 제거하는 수술도 이제 곧 해야 하는데 안정은커녕 이사도 준비하지 못했다.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변호사를 통해 고소 등을 하면서 코 앞에 닥친 이사문제는 준비도 못한 것이다. 올해 즈음해서 가지려고 했던 자녀 문제는 이제 생각도 나지 않는다.
두 가정뿐만이 아니라 모든 피해가정에게 이번 피해 전세금은 지금껏 피땀 흘려 모은 돈일 것이다. 하지만 이 돈 문제보다 더 큰 충격은 믿음에 대한 배신이다. 전세아파트에 문제가 있다고 알았을 때 그들은 갖은 이야기로 피해자들을 달래고 심지어는 찾아와 울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 피해자들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의심한다.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고소를 진행하면서 들어가는 많은 비용들 역시 부담이다. 고소를 진행하면서 벌써 상당한 액수를 사용하고 있고, 그나마도 법정에서 이겨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거란 확신도 들지 않는다. 경매로 넘어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가정이 줄을 잇고 있는 아파트단지의 민심은 흉흉하다. 사람들의 인간적인 정까지 이용한 이번 사건은 피해자들과 그 가족뿐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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