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경 마을교육공동체 어울림협동조합 이사장

한은경 마을교육공동체/어울림협동조합 대표 ⓒ당진신문
한은경 마을교육공동체/어울림협동조합 대표 ⓒ당진신문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면서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였던 일본은 이제 우리의 안보 협력 파트너’라는 귀를 의심케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나는 오늘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 일본의 사과와 참회를 요구하고 구걸하지 마라!’라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연일 계속되는 친일 논란에 정부는 더 참혹한 발표를 내놓았다.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 입장 발표’ 회견이 그것인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피고 기업 대신 국내 재단이 기부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한 것이다. 이 납득할 수 없는 강제동원 피해 보상안은 무엇을 위한 결단인가?

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나주공립보통학교 6학년이던 13살 때인 1944년 일본인 교장의 반강제적 권유로 일본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이 운영하는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 동원되었다. 

매일 중노동에 시달렸지만 약속했던 임금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 김성주 할머니는 보통학교를 졸업한 상태에서 아버지는 징용 가고 할머니와 어린 동생과 살고 있었는데 일본에 가면 중학교, 고등학교 공부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에 도장을 찍고 일본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왔다. 공부는커녕 매일 침대 길이만 한 것을 허리에 묶고 있는 힘을 다해 작두로 부품을 잘라야 했다. 어느 날 작두에 손가락이 잘렸지만 병원도 못가고 빨간소독약을 바르는게 전부였다. 

이렇게 강제로 또는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속임수에 끌려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강제동원 피해자가 2005년 지자체에 접수된 사람들만 22만 8126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금덕 할머니는 1992년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을 상대로 한 이른바 ‘천인소송’을 시작으로 일본에서 진행된 3개 소송에 참여하면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기 위해 31년을 싸워왔다. 

일본에서 진행된 소송은 모두 패소했지만 포기하지 않은 양금덕 할머니와 14명의 강제동원 피해자는 변호사와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국내에서 다시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2018년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 판결의 의미가 큰 것은 1965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대일 청구권 포기를 합의한 한일청구권협정과는 별개로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고 보고, 일본기업의 책임을 인정하고 미쓰비스 중공업 등 전범기업에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이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고에 이어 재항고를 제기했고 현재 재항고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전범 기업들이 배상을 미루는 사이 14명 중 11명은 숨을 거뒀고, 이제 양금덕 할머니와 김성주 할머니, 이춘식 할아버지 3명만이 생존해 계신다.  

전쟁 범죄 기업에 대한 배상 소송은 단순히 못받은 임금을 받아내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명백한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사죄하라는 것이 소송의 의미이고 취지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국내 기업들로부터 거둔 자금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은 결국 일본의 한반도 침략과 전쟁범죄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정부의 이번 발표에 일본과 미국은 즉각적으로 환영 의사를 밝혔다. 일본은 그렇다치더라도 미국은 왜 휴일 저녁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한꺼번에 성명을 내며 환영했을까?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미국의 의중이 반영된 조치가 아닐까 의심되는 대목이다.

2023년, 양금덕 할머니는 95세의 노구를 이끌고 다시 싸움의 현장에 서게 되었다. 이제부터 싸움은 일본과 더불어 대한민국 정부와의 싸움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묻고 있다. 가해자인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이 없는데 피해자인 대한민국이 자진해서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정부가 주는 기금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단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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