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용길 한국노벨과학문화연구원 원장

성용길 한국노벨과학문화연구원 원장. ⓒ당진신문
성용길 한국노벨과학문화연구원 원장. ⓒ당진신문

매년 10월초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때맞추어 모든 신문과 방송을 비롯한 매스미디어 매체들이 앞 다투어 노벨상에 관한 기사를 보도한다. 그리고 노벨이 돌아가신 기일을 기념하는 12월 10일에는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노벨재단에서 주관하는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다. 

일반인들은 스웨덴이라는 나라는 잘 몰라도 노벨상에 관해서는 대부분 잘 알고 있다. 1901년부터 현재까지 백 여 년이 넘는 동안 120여회에 걸쳐 노벨상이 시상되어 이제 뿌리를 내린 세계적인 상(賞)이 되었다. 

이 노벨상은 금메달 외에 상금이 다른 어느 상보다 크고 많다. 노벨물리학상, 노벨화학상, 노벨생리·의학상, 노벨문학상, 노벨평화상, 노벨경제학상 등 6개 분야에 분야별로 금년도에는 13억 5000여만 원이었으니, 노벨재단에서 연간 상금으로 약 100억 원을 쓰는 셈이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유명하고 큰 상이 바로 노벨상이다. 

노벨재단과 노벨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 재단의 이름은 알프레드 노벨의 이름에서 연유한다. 알프레드 노벨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1833년 10월 21일 태어나서 1896년 12월 10일 이탈리아 산레모 산장에서 돌아가셨다. 그는 생전에 화학-화공분야에 과학자이자 산업가였다. 

그는 생전에 355개의 특허권을 얻었고, 그 중에 대표적인 특허가 다이너마이트 폭약의 특허다. 그 특허들을 기반으로 그의 아버지, 임마누엘 노벨로부터 물려받은 광산과 제조업을 재건하여 많은 재산을 일구었다. 그리고 그 많은 특허를 활용하여 20여 개국에서 80여개의 자회사를 경영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노벨재단(노벨메달과 알프레드 노벨). ⓒ당진신문
노벨재단(노벨메달과 알프레드 노벨). ⓒ당진신문

알프레드 노벨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1차 유언장과 2차 유언장이 나왔다. 그 유언장에서 그는 자기가 남긴 재산을 유가증권으로 바꿔 스웨덴 중앙은행에 기금을 만들고, 그 기금의 이윤으로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을 통해 인류에게 지대한 공헌이나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매년 선발하여 상금을 분배하여 주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노벨이 세상을 떠난 4년째 되던 해, 1900년 6월 29일에 스웨덴 스톡홀름에 노벨재단(Nobel Foundation)이 탄생했고, 1901년 12월 10일부터 노벨상이 주어지기 시작하였다. “인류를 위한 과학발전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라는 노벨의 유언에 따라 노벨기금이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첫해에 노벨물리학상 제 1호는 ‘X-선을 발견’한 독일의 렌트겐, 노벨화학상 제 1호엔 ‘화학동력학과 삼투압을 발견’한 네델란드의 오스트발트, 노벨생리의학상 제 1호엔 ‘디프테리아 병의 원인과 치료요법’을 발견한 독일의 본 베링에게 주어졌다. (다음 호에 계속)


성용길

한국노벨과학문화연구원 원장
동국대학교 이과대학장, 명예교수
미국 유타대학교 이·공학박사(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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