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 당진시 경제연구원장(전,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이성주 당진시 경제연구원장(전,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당진신문
이성주 당진시 경제연구원장(전,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당진신문

[당진신문]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소비의 중요성을 우물에 비유한 점이 돋보인다. 그에 의하면 재물은 우물과 같다. 우물은 퍼 쓸수록 자꾸 새 물로 채워지고 이용하지 않으면 우물은 말라버리고 메워진다. 이어서 그는 비단옷을 입지 않으면 비단 짜는 사람이 없어지고 즉 비단 짜는 여공이 없어지고 결국에는 비단 짜는 기술마저 없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재앙으로 나라마다 국민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소비가 줄어들어 자영업자들이 길거리로 나와 연일 경제적 고통을 하소연하고 있다. 소비의 절벽으로 생산이 멈추고 이로 인하여 생산에 종사하던 가장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실의에 빠져있다. 국가는 국고를 열어 재난지원금으로 임시 처방하여 성난 민심을 잠재우려 하지만 어느 때까지 이것이 가능할까? 

경제활동이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분배하며 소비하는 활동을 총칭한다. 이러한 경제활동은 시계의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즉 가계는 기업에 생산 요소를 제공하고 그 댓가로 소득을 얻어 소비하고, 기업은 가계가 제공한 생산요소를 이용하여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여 이윤을 추구하며, 정부는 가계와 기업이 낸 세금으로 공공재를 생산하고 기업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한다. 우리의 지체 중 어느 한 부분이 아프면 그 고통은 몸 전체가 느끼게 된다.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소비의 단절은 생산을 멈추게 하고, 생산의 단절은 기업의 파산과 개인의 실업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파산과 실업의 고통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고통이 결국 국가의 위기를 초래한다.

여기 국민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는 상생의 길이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의 ‘우물론’에서 그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우물을 자꾸 퍼내어야 새 물이 솟아난다. 새 물이 솟아날 때 목마른 시민들은 우물가에 몰려든다. 우물가에 몰려든 많은 사람들은 우물의 부족을 느끼게 되어 또 하나의 우물을 파게 된다. 경제활동에서 소비가 미덕이 될 수 있다. 여기서 과소비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유도함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개인은 소비를 늘려 주어야 한다. 

이것이 경기 침체로 실의에 빠진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고 국가 경제를 살리는 방안이기도 하다. 소비가 생산을 부르고, 생산이 기술의 혁신을 부르고, 기술의 혁신이 국가 경제의 신화를 창조한다. 신화 창조의 과정에서 흄페터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게 되고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게 된다. 경제활동에서 상생과 번영의 길은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경제 침체로 신음하는 중소기업을 돌아보고 소비의 미덕을 발휘하여 중소기업에 경제적 신화 창조가 있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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