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옛사진 분석과 고증에 의한 객사 복원

객사가 복원될 곳은 면천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다.현재 텅 비어있지만 객사가 복원되면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객사가 복원될 곳은 면천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다.현재 텅 비어있지만 객사가 복원되면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면천읍성 복원사업을 진행중인 당진시가 올해에는 객사 복원 및 정비와 동남치성 복원을 중점적으로 추진한다.

객사는 조선 시대에, 주로 왕의 위패를 봉안하고 공식 행사를 하던 곳이다. 가운데 위치한 정청과 동익헌, 서익헌으로 구성돼 있고 정청에는 조선 임금과 중국임금을 상징하는 전패와 궐패가 모셔져 있었다. 보름에 한번 전패와 궐패에 절을 올리며 예를 갖추는 의식 삭망례를 진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남광현 문화재팀장은 “객사는 조선왕조의 정체성이 담겨있다”며 “객사는 정청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동헌(사또 근무지)보다 위계가 높은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객사는 옛 면천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1911년 공립면천보통학교가 개교할 당시 객사는 다행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고, 일부 남아있었으며 개조해서 학교 시설로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당시 촬영한 졸업사진에는 학생들 넘어 보이는 객사의 일부 모습이 찍혀있고 그때 당시 사진 일부가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 27일 공립면천보통학교  7회 졸업사진. 칼을 짚고 앞줄에 앉은 일본인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뒤에 보이는 모습이 옛 객사 일부 모습. 당진시는 남아있는 옛사진에 담겨있는 객사의 옛모습을 분석하고 자문 등을 얻으며 고증에 따라 객사를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자료제공=당진시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 27일 공립면천보통학교 7회 졸업사진. 칼을 짚고 앞줄에 앉은 일본인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뒤에 보이는 모습이 옛 객사 일부 모습. 당진시는 남아있는 옛사진에 담겨있는 객사의 옛모습을 분석하고 자문 등을 얻으며 고증에 따라 객사를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자료제공=당진시
일제 강점기인 1927년 3월 23일 공립면천보통학교 14회 졸업사진.  뒤에 보이는 모습이 옛 객사 일부 모습. 당진시는 남아있는 옛사진에 담겨있는 객사의 옛모습을 분석하고 자문을 얻으며 고증에 따라 객사를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자료제공=당진시
일제 강점기인 1927년 3월 23일 공립면천보통학교 14회 졸업사진.  뒤에 보이는 모습이 옛 객사 일부 모습. 당진시는 남아있는 옛사진에 담겨있는 객사의 옛모습을 분석하고 자문을 얻으며 고증에 따라 객사를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자료제공=당진시

남광현 문화재팀장은 “고 박상건 교장(당시 교사)에 따르면, 1970년대 학교가 다시 지어질  당시 면천국민학교를 중심으로 객사 보존을 위한 2억 5천만원의 모금운동을 했지만 모금운동은 목표대로 되지 않았고, 대신 객사의 주춧돌을 일부러 피해서 학교를 짓게 됐다고 한다”며 “2019년 면천초등학교 자리를 발굴하면서 그대로 남아 있는 객사의 주춧돌들이 파악됐고, 남아있는 사진자료를 분석하고 문화재자문위원회의 자문 등을 통해 고증에 의한 객사 복원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춧돌이 남아있는 것은 1970년대 다시 학교를 지을 때 객사 자리를 피해 지었던 당시 조상들의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는 올해 당진시의 복원 노력으로 이어진다.

객사가 복원되고 정비될 옛 면천초등학교 자리는 현재 텅 비어있다. 그동안 발굴을 해왔기 때문. 남광현 문화재팀장은 “객사가 완성되면 상징성이 구축되고 뒤쪽에는 잔디를 식재하는 등 경관포인트가 될 것”이라며 “다양한 공연이 가능하고 박시순 일기에서 객사를 언급하는 만큼 스토리텔링 요소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시순-면천에 부임했던 군수로, 면천에서의 일기 면불일기를 남겼음.)

객사의 규모는 183.94㎡(약 55평, 처마까지 포함시 70여평)이다.

동남치성 공사현장의 모습
동남치성 공사현장의 모습

작년 서남치성 복원에 이어 올해는 동남치성도 복원한다. 치성은 성벽의 바깥으로 덧붙여서 쌓은 벽이며 적이 접근하는 것을 일찍 관측하고 싸울 때 가까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한마디로 성에 오르는 적을 협공하기 위한 방어시설이다. 

남광현 문화재팀장은 “각자성돌(조각을 해서  공사 책임 소재를 명문화 한 돌)이 계속 나왔고, 구체적으로 당시 관리자의 이름이 남아있어 이를 잘 살릴 것”이라면서 “예전에는 여관과 목욕탕이 있던 자리였는데 역사적 공간을 다시 만드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예전에 면사무소가 있던 자리는 동헌(사또 근무지)이 있던 자리로, 올해 추가 발굴을 진행할 계획이다. 올해 객사와 동남치성 복원을 마치면 2026년까지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면천읍성 전체복원 사업은 60%정도 완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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