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 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신기원 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신기원 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당진신문=신기원]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던 청소년기에 자아인식의 일환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곤 하였었다. 신체적인 성장에 따른 정신적인 발달이 부조화를 이루었던 시절이라 자아정체감형성과 관련하여 당연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자신에 대해 알만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질문을 계속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다른 사람에게 비쳐진 나’와 ‘진짜 나’가 달라서일까 아니면 ‘현실의 나’가 ‘이상적인 나’를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일까. 

인간에 대한 입장과 관련하여 대학에서 합리적경제적 인간관과 사회적 인간관 그리고 자아실현적인간관과 복잡한 인간관이 있다는 것을 배운지 사십여년이 지났다. 또 인간의 욕구와 관련하여서도 생리적욕구라는 저차원의 욕구에서부터 자아실현적 욕구라는 고차원의 욕구가 단계적으로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친지도 이십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살아보니 인간이란 다원적·복합적인 존재이고 욕구 또한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와 관련하여 칼 융은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고 상황에 맞게 꺼내쓴다’라고 하였다. 페르소나(persona)란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으로 융은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이라고 하였다. 즉 우리는 잠재적으로 여러 개의 가면(자아)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이 처한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 해당되는 가면을 꺼내서 쓰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직장생활에서는 소심했던 사람이 퇴근후에는 열정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교실에서는 범생이 게임방에서는 폭군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트랜드코리아 2020이라는 책에서는 이를 멀티 페르소나라고 명명하였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컴퓨터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결합시킨 유비쿼터스(Ubiquitous)하에서는 다양한 페르소나가 가능하고 실제 유행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가상공간에서는 성별이나 나이 및 직업을 속여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연하게 하고 끊임없이 유동시킨다. 또 SNS상으로 계정을 여러개 만들어 다양한 가면(자기)을 보여줌으로써 각 계정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스마트기기가 다양화되고 SNS가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 특히 밀레니엄세대나 Z세대에게는 익숙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소유의 한계를 느끼고 경험의 즐거움으로 방향전환을 한 사람들이나 소확행과 워라벨을 일상화하려는 사람들은 매일 매일 다르게 살고 싶고 또 그렇게 해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디지털허언증은 멀티페르소나의 폐해일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론 숨겨진 자아를 위한 케렌시아라고 할 수 있다. 

‘가상의 나’와 ‘실재의 나’가 어떻게 다를 수 있으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복면가왕이라는 프로에 출연한 인사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간접체험할 수 있다. 개인화를 넘어서 원자화되고 있는 시대에 인간은 자신의 숨겨진 욕구를 자유롭게 표출하고 싶어하며 거기서 안식과 즐거움 그리고 만족을 느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몇 개의 가면(페르소나)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 가면은 실제 나를 얼마나 대변하고 있을까. 또 우리는 어떤 가면을 쓰고 있을 때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생각할까. 그런데 다른 사람 역시 가면을 쓰고 나와 접촉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진정한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될지 이성적이고 판단적으로 대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멀티페르소나를 통하여 자유로운 자아를 발현하는 것도 좋지만 사회적인 책임감과 상호신뢰 역시 인간관계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개인들의 자기표현이 자유로워진 시대에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면은 중요하다. 따라서 각자는 상황에 따른 가면놀이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 의미있는 존재로 인식되고 가치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나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내 안에 있는 가면을 확인하는 행위이자 자아정체성 재확립을 위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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