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탑사는 면천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면천면 성하리 성왕산의 연화봉에 우치하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다. 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고려 후기 보조국사 지눌이 중수하였으며, 그 후 조선 정조 2년(1798) 중 연암당, 지윤이 중건하였다 한다.영탑사는 신라말엽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믿기 어렵고, 다만 영탑사내에 현존하는 불상과 석탑 등을 고려해 볼 때 고려시대에 초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이와 함게 영탑사에 대한 오래된 기록으로는 면천군
우강면은 강문리(江門里)의 삽교천변에 조선시대에 있었던 범근내포(泛斤乃浦)에서 기원한 범근내(泛斤川, 泛川)에서 유래된 면천군 범천면(泛川面) 지역이다.범근내(泛斤川)는 이두식으로 읽으면 버그내가 된다. 즉 범천면의 송산리(松山里), 홍원리(洪元里), 박원리(朴元里), 세류리(細柳里), 점원리(點元里), 범근시리(泛斤市里), 송오지리(松五之里) 등 34개 동리를 관할했다. 1914년 군면통폐합에 따라서 범근시리와 점원리는 합덕면으로, 송오지리는 신평면으로 넘겨 주고 동시에, 1906년에 아산군의 월경지로 있다가 면천군으로 편입된 이
남이흥 장자 의풍군(宜豊君)이 모친과 함께 낙향 후섬에 복숭아와 오얏나무를 심어서 도리섬(桃李島) 유래도이리(桃李里)는 원래 해미군 서면(西面)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면(西面) 상도리(上桃里), 전동(箭洞), 애동(艾洞), 하도리(下桃里), 하두리(下杜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도이리라 해서 서산군 대호지면(大湖芝面)에 편입되었다가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해서 당진군에 편입된 마을로 신동(新洞) 간사지를 간척하기 이전에 바다가운데 섬이 있고 그 섬에 복숭아(桃)와 오얏나무(李)가 많이
600년 전에 맹곶 말목장이 있던 곳현재 지도상에 큰마섬(大馬島), 소마(小馬)로 존속조선시대 목장은 고려시대 목장을 재건하는 한편 수초가 많은 곳을 찾아 새로 목장을 설치하여 국영, 사영의 다양한 목장이 많이 있었다. 그 당시 사육되는 목축에 다라 말목장, 소목장, 양목장, 양목장, 돼지목장, 양목장 등이 있었다. 말목장의 수는 에 59개, 산천 조에 87개소, 에 123개, 에 114개, 에 138개소, 에 172개 등이 나와 있다. 에
면천의 옛지명은 혜군(槥郡)이 아니라 추군(橻郡)橻→槥→構→搆의 전사과정상의 오류삼국사기(三國史記)는 김부식(金富軾)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1145년(인종 23년)에 펴낸 관찬 사서로 삼국의 건국으로부터 고려로 통일될 때까지 약 천 년동안의 정치적 흥망과 변천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현존하는 국사서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삼국의 사실을 본기 28권, 연표 3권, 잡지 9권, 열전 10권 등 모두 50권으로 나누어 기록해 놓았다. 이 중에서 잡지(雜誌) 3, 4, 5, 6(권 34, 35, 36, 37)은 지리지로서 삼국의 437
창택산 봉화와 응하던 고산 봉화가 있던 곳최근에 고산아래 하천에서 고산사 부도 발견당진지역은 삽교천을 끼고 있는 합덕이나 우강의 소들강문(牛坪江門) 평야지대를 제외하고는 비산비야지로 낮으막한 산들이 올망졸망 입지하고 있다. 당진에서 제일 높은 산인 아미산을 비롯하여 망객산, 석문산, 창택산, 석화산, 둥군봉, 자모산, 은봉산, 이배산, 고산봉 등 많은 야산들이 입지하고 있다.고산(高山)은 당진 서북부 고대면에 위치한 해발 154m의 야산으로 고산봉(高山峰), 봉화산(烽火山) 이라고도 부른다. 고산은 주변의 고대 평야 한가운데에 솟아
원래는 長古項이 아니라 長鼓項장고의 목처럼 오목하게 파인 외목장고항(長古項)은 원래 1914년 일제가 전국 행정구역 통폐합시 당진군 내맹면(內孟面) 대마도리(大馬島里), 소마도리(小馬島里), 사동(寺洞), 한천리(寒泉里), 장고항리(長古項里)를 한 개 리(里)로 통합하여 장고항리라 하였다. 장고항은 원래 석문 반도(石門半島)가 서해 쪽으로 쭉 뻗어나가고 당진 쪽 과의 사이에 장고(長鼓)의 목(項)처럼 좁게 생겨서 장고항(長鼓項)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김정호가 1861년에 제작한 유명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보면 장고목처럼 옴폭
송악읍 기지시리에서 한진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석포리 갯께 마을 조금 못미처 왼쪽 산록에 송산면 명산리가 나타나고, 그 입구 마을이 마을이다. 원래 마을이 음운, 축약되어 마을로 변한 것이다. 서원머리-선머리 마을은 즉 동악서원의 입구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아주 유명한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의 동악서원(東岳書院)이 있었다. 지금도 그 터가 있고 주변 민가나 밭에 주춧돌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동악서원은 현재 폐허가 되었지만 서원터와 약간의 유물 및 고기록은 전하고 있다
약 500년전(1739년) 영조의 딸 아기씨 태실순성면 성북리 태봉산에 파손된 채 방치,복원 시급순성면 성북리에 가면 태봉산(胎封山)이 있다. 지금까지 당진 지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야트막한 야산이다. 그러나 이 산을 노인들이 오래전부터 태봉산이라고 불러왔다. 지금까지는 무관심하게 방치되어오던 것을 필자가 최근에 순성면지 발간에 참여하면서 새삼 그 가치의 중요성을 알고 여기에 소개한다. 이산을 태봉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기옹주(한자는 아지)의 태를 묻은 태실과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표석이 서있기에 그렇게 부르게 된 것
버그내는 우강면의 상징인 삽교천의 옛 이름‘버그네’가 아니고 ‘버그내’가 맞는 것”우리는 어려서부터 을 이라고 부르지않고 이라고 불렀다. 버그내는 우강면에 있는 범근내(犯斤內), 범근내포(犯斤內浦), 범천포(泛川浦), 범근천(泛斤川), 범천(泛川), 범근시(泛斤市) 등과 관련있다.삽교천을 한자로 처음에는 범근내, 범근천, 범천 등으로 기록한 것이, 범근천(泛斤川)을 이두식으로 표현해서 버그내이다. 즉 버근내-버그내로 ㄴ이 탈락한 것이다. 그럼 왜 합덕장을 버그내장으로 오래전부터 불러올까? 원래 합덕읍 운
옛날 절이나 촌락입구에 서있어 길가는 나그네의 이정표(里程表)를 알려주거나 마을 역신을 방지하는 등 우리 인간생활과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장승은 대개 높이 3~5m이고 숫장승으로 웅장승(雄長丞)인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암장승으로 치장승 (稚長丞)인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의 한 쌍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도 시골의 곳곳에는 이런 장승이 많이 남아 있다. 장승 명칭은 촌락지명, 고개명, 터지명 등 다양하게 붙는데 촌락지명으로 유명한 것은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 등의 장승백이다. 이 근처에는 장승백이 가구점, 장성주유소 등
350년전 망주석에는 命聖洞과 蘇約山으로현재는 明星洞과 八娥山 지명으로 사용팔아산(八娥山)은 송악읍 가학리 송악중고등학교 뒤족에 위치한 해발 90m 높이의 산이다. 북서쪽으로는 송산면 상거리 북쪽으로는 송산면 명산리 일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송악읍에서 등산로를 개설하였고 팔아산(소약산)정상에 팔각정을 건설하여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주변에 체육단련 시설이 잘 갖추어 있어 산책하기에 좋은 장소이다.이곳 정상에서 북쪽 골에 송산면 명산리 멍성골(松山面 明山里 明星洞) 마을이 위치하고 있으며, 송악읍 가학리 쇠학골(松
신평면 운정리에 600여년전에 세워진 매향비석과 돌미륵당진시내에서 삽교천 방조제로 통하는 길을 따라 가다가 신평면 운정리(신당길 255-67) 삽교천변 운정 양수장 근처에 가면 옛 백제시대의 신평현(新平縣)의 읍치로 추정되는 신평현성(新平縣城)이 있고, 그 인접지 탑재마을 수로 변에 마을이 있다. 이곳 마을 수로 변 옆에 가면 정말 멋진 돌미륵 하나가 서 있고, 그 옆에 작은 돌비석이 하나 나란히 서있다..이 돌미륵은 남근석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크기는 높이 217cm, 두께 70cm 내외로 얼굴만의 크기는 92cm 이
충남의 문화권은 백마강(금강)중심의 금강문화권과 삽교천 중심의 내포문화권으로 크게 2대분 된다. 삽교천은 내포지방의 젖줄이요 가야산은 내포지방의 심장이다.삽교천은 유로연장 58.6km, 유역면적이 1649.4km2인 국가하천으로 이칭은 버그내, 범근천, 범근내, 사읍교천, 신교천, 금마천 등으로 부른다. 충남 홍성군 장곡면 신풍리 상풍 마을 신풍저수지 남쪽 오서산 계곡에서 발원하여 장곡천(長谷川)이 되고, 금마면을 거치면서 금마천(金馬川)이 되고, 여러 지천들을 합류하여 북쪽으로 계속 흘러가면서 예산군 삽교읍에 이르러서 삽교천(揷橋
당진시의 최북단 석문면 난지도리에 속하는 섬으로 대난지도와 소난지도가 있다. 대난지도 (大蘭芝島)는 석문면 교로리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진 해상에 있는 당진시에서 가장 큰 섬이다. 이 곳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소난지도, 우모도, 소조도 등의 섬이 연이어 있다. 대난지도에는 천연해수욕장인 난지도해수욕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당진3경으로 불린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바다를 막아 염전을 만들고 농경지도 조성하였다. 현재 대난지도와 소난지도를 다리로 연결하는 연육교 건설이 진행되고 있어 2~3년 내로 완성되면 두 섬은 붙어 전천후 관광지로 변할 것
편집자주당진신문은 창간 28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당진 향토문화의 뿌리 찾기에 일생을 받쳐온 당진 출신 김추윤 박사의 난을 신설하여 장기 연재하고자 한다.김추윤 박사는 그동안 등 당진관련 책을 여러 권 저술하여 내포학의 체계를 세우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당진의 중견 향토학자이다. 현재 신한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과 중앙도서관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본지의 창간에 참여한 이래 현재까지 편집위원으로 있으며 충남역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