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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당진신문 역사산책] 면천공립보통학교 3.10만세 시위를 주도한 원용은Ⅰ

2018. 12. 14 by 당진신문
원용은
원용은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조선 사람들에게 기미년은 벽두부터 기대에 부풀게 한 해였다. 멀리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다는 소식과 함께, 몇 몇 약소국들이 독립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조선에까지 들려온 것이다. 조선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쩌면 기미년에는 독립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겨났다. 나라를 빼앗긴지 꼭 10년째 되던 해였다.

바닷길을 통해 경성을 드나들던 시대였기에 경성에서 3.1독립 만세 시위가 벌어졌다는 소식은 당진에도 신속하게 전해졌다. 이에 따라 당진면에서는 3월10일에 천도교가 앞장서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당진에서 3.1독립 만세 시위는 당진면에서 만이 아니었다. 바로 면천에서 나이 어린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3월10일에 독립만세를 부른 것이다. 보통학교 학생들이 벌인 충남 최초의 3.1독립 만세 시위였다. 

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3.10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게 된 출발은 원용은에 의해서였다. 원용은은 1919년 당시 면천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원용은이 3.10 면천공립보통학교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게 되었던 것은 고종의 인산을 보기 위해 경성을 방문하면서였다.

격동의 1919년 마침 나라의 임금이던 고종이 죽어 인산일이 3월1일로 정해졌는데 원용은이 형 원용하와 함께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던 것이다. 원용은이 고종의 인산을 보기 위해 경성을 방문했던 것은 시대적 상황도 있었겠지만 그의 가풍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원용은의 아버지 원형상이 서울 계동에 살면서 구한국 시대 무과에 급제하여 정3품 벼슬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원용은은 원형상의 둘째 아들로 서울 계동에서 태어났다. 원용은이 7세 되던 해에 구한국의 녹을 먹고 있던 아버지 원형상이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자 모든 것을 정리하여 순성면 성북리 유동으로 낙향하면서 원용은도 순성 유동에서 살게 되었다.

원용은이 살았던 유동의 옛집은 유동초등학교 자리로 지금은 아미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는 순성면 성북리 160-1번지이다. 유동으로 낙향한 원용은의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았던지 귀향한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원용은의 나이 11세 때의 일이다. 아버지를 잃은 원용은에게는 형인 원용하와 어머니 평양조씨가 있어 보살핌을 받고 구김살 없이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원용은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것이니 유복하게 자랐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용은의 옛집에는 현재 아미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원용은의 옛집에는 현재 아미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원용은이 다닌 공립면천보통학교는 1911년 7월 7일 설립 인가를 받아 9월1일 개교하였다. 인근 지역의 덕산공립보통학교는 1912년에 개교하였고, 당진공립보통학교는 1913년에 각각 개교를 하였으니 당시 인근 지역에서 최초로 개교한 공립보통학교인 셈이다. 공립면천보통학교는 옛 면천군의 객사를 교사로 개조하여 4년제 학교로 개교하여 1학년 30명이 입학하였는데 11월1일 면천공립보통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원용은은 어려서 12살 때까지 유동에 있는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였다. 그러다 12세 되던 1915년에 면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원용은이 면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은 교사들이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유동에 들렸다가 원용은이 면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겠다고 따라 나서게 되면서였다.

당시에는 면천공립보통학교가 생겼어도 학교에서 일본글을 가르친다고 하여 학부모들이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설사 학부모들이 학교에 보낸다고 해도 아이들이 학교가기를 꺼려하였다고 한다. 수업료도 받지 않고, 교과서도 무료로 배부하며 학생을 모집하여도 학생이 모집되지 않자 교사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강제적으로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홍보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원용은은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유동에 들렸다가 돌아가는 교사를 따라 스스로 면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는 것이다. 1915년 원용은과 함께 면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모두 37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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