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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신문 역사산책] 3.1혁명에서 찾은 심훈의 또 다른 이름 심대섭Ⅴ

2018. 11. 02 by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상해 망명 기간 중 사회주의에 접한 심대섭은 국내로 돌아 온 후 사회주의자 친구들과 가까이 하면서 활동하였다. 우선 1924년 사회주의 성향의 인물들인 박헌영, 임원근, 허정숙 등과 함께 ‘동아일보사’에 들어갔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박헌영은 심대섭과 경성고보 동기 동창이자 후일 조선공산당의 당수를 지낸 인물이다.

임원근 역시 유명한 언론인이자 사회주의자로 허정숙과는 부부였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심대섭이 중국 망명 기간 중 함께했던 박헌영과 임원근은 단순한 친구를 넘어 함께 활동했던 동지였다고 볼 여지가 많다. 실제로 동아일보에 입사한 후 심대섭은 박헌영, 임원근과 함께 활동하면서 1926년 이른바 '철필구락부사건'으로 해직당하기도 하였다. ‘철필구락부사건’은 각 신문사 사회부 기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철필구락부’가 급료 인상 파업을 일으킨 사건이다.

심대섭도 ‘철필구락부’에 가입했는데, 얼마 뒤 이 파업은 다른 부서에도 번져 같이 입사한 박헌영 · 임원근 · 허정숙은 물론 여러 기자들이 일제히 사표를 내는 사태로 이어졌다.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근무하는 동안 심대섭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하나는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시작하였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심훈이란 필명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이다. 특히 심훈이란 필명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1926년부터였는데, 동아일보에 ‘탈춤’이라는 영화소설을 심훈이란 필명으로 발표한 것이다.

이때부터 심훈이란 필명은 한동안 심대섭과 함께 사용되었다. 이후 심대섭은 이름에서 대섭을 버리고 심훈으로 바꾸기에 이른다. 이에 대해 심대섭은 “별다른 이유 없이 본명을 쓰기 싫어서 심훈이란 필명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술회하였다. 이때부터 심대섭이 아닌 심훈으로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심훈은 이듬해인 1927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의 ‘일활촬영소’에서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하였다. 심훈은 일본에서 영화를 배우는 동안 ‘춘희’라는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였는데 비록 엑스트라였지만 심훈은 영화배우로 데뷔하게 된 것이다.

심훈은 이후 이때의 상황을 회상하는 글을 1933년 ‘경도의 일활촬영소‘라는 제목으로 신동아에 기고하기도 하였다. 일본에서 귀국한 심훈은 나운규, 안종화, 김기진 등과 함께 ‘영화인회’를 만들어 간사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영화인으로 살아갔다.

이때 만든 영화가 ‘먼동이 틀 때’였는데 원작·각색·감독까지 도맡아 영화를 만들었고,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렇듯 심훈은 영화인이라는 또 다른 이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심훈을 상징하는 또 다른 이력은 그가 자유연애주의자였다는 사실이다. 심훈은 일찍이 17세 때인 1917년 이해영과 결혼하였다. 집안의 뜻에 따른 결혼이었기 때문이었던지 이해영과의 결혼 생활은 원만하지 않았던 듯하다. 젊은 부인을 두고 중국에 망명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중국에서 귀국한 뒤 이듬해인 1924년 이해영과 이혼하였다는 것도 그렇다. 심훈이 재혼한 것은 1930년의 일이다.

상대는 안정옥으로 열일곱 살의 무용가 지망생이었다. 심훈이 안정옥을 만난 것은 안정옥이 열두 살이던 1924년의 일이다. 심훈은 고종사촌이자 경기고보 동창인 동화작가 윤극영이 운영하는 소녀합창단 ‘따리아회’의 후원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신문에 합창단을 홍보하는 활동을 하였는데 안정옥은 소녀합창단의 단원이었다.

안정옥과의 만남으로 심훈은 바라던 대로 자유연애에 의한 재혼을 이루게 되었다. 이렇듯 심훈이 자유연애를 추구했던 원인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시대적 상황에 따른 연애관, 결혼관의 변화와 적극적인 수용으로 볼 수 있다.

당시는 신문물이 들어오고 교육받은 신여성이 탄생하면서 구시대의 조혼풍습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부각되던 시대였다. 여기에 풍습에 따라 일찍 결혼하여 불행한 삶을 살았던 누나를 보면서 조혼타파와 함께 자유연애를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심훈으로 하여금 자유연애를 추구하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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